2. <문묘제례악>                                  
  


문묘제례악은 공자를 비롯하여 그의 제자인 안자, 증자, 자사, 맹자와 우리나라의 유학자 설총, 최치원, 정포은, 이율곡, 이퇴계 등 명현 16위의 위패를 모신 사당에 제사할 때 행하는 악․가․무 일체를 말하며 이를 ‘문묘악’이라 줄여서 부르기도 하고 ‘석전제악’이라고도 하며 영신례 절차의 악명인 ‘응안지악(凝安之樂)’을 문묘악의 일반명칭으로 사용하기도 한다.

문묘제례악은 본래 중국 상고시대에 기원을 둔 음악으로 우리나라에는 고려 예종 11년(1116년) 중국 송나라에 사신으로 갔던 왕자지(王字之)와 문공미(門公美)가 돌아오면서 송나라의 대성아악(大晟雅樂)을 들여오면서 시작되었고 그 뒤에 원구(원丘)·사직(社稷)·태묘(太廟)·문묘(文廟) 등의 제향에 사용되었다.

오늘날 전하는 문묘제례악은 조선시대 세종 때 박연(朴堧)이 중심이 되어 원나라의 임우(林宇)가 쓴 『석전악보』(釋奠樂譜)를 참고로 하여 이루어져 있다. 그 뒤에 임진왜란과 병자호란 등을 거치면서 약화되었다가 영조(英祖)때 다시 복구되었으며 이것이 오늘날까지 이르고 있다. 현재 연주되고 있는 곡은 영신황종궁(迎神黃鍾宮), 고선궁(姑선宮), ·중려궁(仲呂宮), 이칙궁(夷則宮), 남려궁(南呂宮), 송신황종궁(送神黃鍾宮) 이상 6곡이다. 지금도 성균관 대성전의 석전의식에서 봄(음력2월), 가을(음력 8월)에 문묘제례악과 악장과 일무가 동시에 연행된다. 음악은 등가(登歌)와 헌가(軒架)라는 두 개의 악단이 번갈아가며 연주를 한다. 대뜰 위에 위치하는 등가는 타악기, 현악기와 노래가 중심이 되며 선조의 문덕을 기리는데 쓰이고 명안지악(明安之樂), 성안지악(成安之樂), 오안지악(娛安之樂) 등이 연주되고 대뜰 아래 위치하는 헌가는 관악기와 타악기가 중심이 되며 선조의 무공을 기리는데 쓰이고 응안지악(凝安之樂), 서안지악(舒安之樂), 성안지악(成安之樂) 등이 연주된다.

문묘제례에서 사용되는 일무는 64명이 추는 8일무로 문무와 무무로 구분되며, 문무는 오른손에 적(翟)과 왼손에 약(약)을 들고, 무무는 오른손에 척(戚:도끼)과 왼손에 간(干:방패)을 들고 춤을 춘다. 영신·전폐·초헌의 의식 절차에서는 문무를 추고, 아헌과 종헌에서는 무무를 춘다. 문묘제례의 의식 절차는 영신(迎新)·전폐(奠幣)·초헌(初獻)·공악(空樂)·아헌(亞獻)·종헌(終獻)·철변두(徹邊豆)·송신(送神)· 망료(望燎) 등의 순서로 진행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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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추천 음반 :  생활국악대전집 제9집 <추모와 기원의 음악>

국악의 장르를 구분할때 처음 정악이라고 하면서 그 밑으로 종묘제례악, 문묘제례악 등으로 열거한다. 그런대로 종묘제례악은 전곡으로 음반이 딱 한장 있는데, 문묘제례악의 전곡 음반은 없다. 있다는 것이 문묘제레악 중에서 1, 2곡이 실려 있을 뿐이다. 그것도 같은 곡이 여기 저기 실려 있을 뿐이다. 여러 장의 음반을 가질 필요는 없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전곡을 들을 수 있는 음반 한장은 이 땅에 있어야 되지 않겠는가?

동양의 최고의 역사상을 지닌 음악이 이 땅에 있다고 자랑을 하지만, 들을 수가 없는 것이 무슨 자랑이 되는지 모르겠다.

이 일은 국립국악원이 마땅히 했어야 할 일이다.

그래도 문묘제례악 중에서 1곡이 아닌 2곡이 실린 음반이 이 음반이다. 국립국악원 연주단의 연주로 1994년에 녹음한 '황종궁'(4:09)과 ' 남려궁'(3:26)이다. 1994년에 국악의 해를 맞이하여 서울음반에서 '생활국악대전집'이라는 이름으로 10장의 음반을 출반하였다. 그 중에서 9집 <추모와 기원의 음악> 편에서 '성현의 추모음악' 밑에 2곡이 실려 있다.

빠른 시일내에, 사라지기 전에 전곡을 감상 할 수 있는 <문묘제례악> 음반이 한장 나오기를 간절히 빌어본다.(2004.11.30)

* 이 음반 지금도 구할 수 있습니다.(201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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