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센스 레코드로 듣는『바로크 이전(Baroque 以前)의 음악』                                   

정 창 관 (홍콩샹하이은행 부장)


  우주가 생성되었을 때 소리도 함께 만들어졌고, 인간이 소리를 듣고 음악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리고 인간이 언어를 사용하게 되자 노래 형태의 음악이 발전하였을 것이다. 인류문명의 발생지에서 발견되는 악기류를 묘사한 벽화나 조각에서, 우리는 어떤 음악인지는 알 수 없으나 분명히 음악이 그 당시에도 존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서양음악 - 고전음악 - 이라고 하면 시대적으로 바로크음악부터 감상하는 것이 일반적이며, 바로크 이전의 음악은 소흘히하는 것이 사실이다. 국내에서 출반된 2700여장의 고전음악 라이센스 레코드중에서 바로크 이전의 음악에 관한 레코드는 30여매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문화사(文化史)의 발전과 같이, 음악사적으로 서양음악도 여러 단계를 거쳐 발전하였음에 틀림없다. 본고에서는 국내에서 출반된 라이센스 레코드를 위주로 바로크 이전의 음악을 음악발전사 측면에서, 시대적으로 고찰하였으므로, 라이센스 레코드로 발매되지 않은 음악 형태와 작곡가의 음악은 언급하지 않았으나, 음악사적으로 중요한 음악 형태와 작곡가는 이름정도만 기술하였다.

1. 암브로시안 성가(Ambrosian Chant)와 그레고리안 성가(Gregorian Chant)

  우리가 라이센스 레코드로 들을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음악이 암브로시안 성가이다. 이는 서기 374년 이탈리아 밀라노의 주교 성 암브로시우스(Ambrosius ; 339(?)∼397)가 교회를 개혁하고, 성가를 수집하여 그 형태를 일신시켜서 만든 교회음악이다. 그 후 200여년이 자나 로마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Ⅰ : 540∼604)가 재위시(590∼604년) 1600곡 이상의 전례성가를 수집·정비하여 그레고리안 성가를 제정하였다. 그레고리안 성가는 서양 문화의 위대한 유산중의 하나이며, 오늘날까지 계속 사용되는 노래중 가장 오래된 것들 중 하나이다. 이 성가는 라틴어 가사로 불리워지며, 무반주로 남성이 부른 단선율(Homophony)의 순수한 음악으로서 가톨릭 교회의 의식에 부속된 기능음악으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시대에 유대인 회당에서 불리워진 시편창이나 찬송가가 모체가 되었음에 틀림없다. 제 2(Two) 바티칸회의(1962∼1965)의 <전례헌법> 116조에는「교회는 그레고리안 성가를 로마 전례의 고유한 노래로 인정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전통적인 성가들은 대부분 전체 회중이 노래 부르기에 적당한 음악으로 대치되고, 의전에 있어서의 라틴어가 각 국가의 고유한 언어로 전환되었기 때문에 그레고리안 성가는 가톨릭 교회의 정규적인 의식에서 실질적으로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이 성가는 중세와 르네상스시대 그리고 그 이후의 음악 - 종교음악에 국한된 것은 아니다 - 의 발전에 큰 공헌을 하였다.

  [레코드] : 한 장의「암브로시안 성가」와 4매의「그레고리안 성가」가 발매되어 있다.「그레고리안 성가」1, 2, 3으로 발매된 레코드는 상호 연관이 없으며, 연주자도 각각 다른 그레고리안 성가이다. 곡은 단순하면서도 신비감을 가져다 주며, 에코우가 조금 있는 성당에서 들려주는 그레고리안 성가는 주위의 십사처(十四處)와 예수 그리스도상과 신비스럽게 조화되어 천상의 노래와 같이 그지없이 아름답고 경건하게 들린다. "단순한 음악이 아름답다"는 생각을 갖게 해준다.「크리스마스를 위한 첫째 미사곡」이라는 제목의 그레고리안 성가는, 성가와 대사가 번갈아 진행되는데, 현재에도 카톨릭 교회의 미사 의식에서 일부분이지만 음악적 분위기가 비슷함을 느낄 수 있다.

2. 다성음악의 발달과 13세기까지의 음악.

  11세기는 음악사에 있어서 결정적인 변화라 할 수 있는 음악 기보법이 발명되고, 다성음악이 단성음악을 대치하기 시작하였다. 처음으로 나타난 다성음악의 형태는「오르가눔」(Organum)이다. 두 개의 성부가 병진행을 하는「병행 오르가눔」은 9세기경부터 존재하였지만, 시대에 따라「자유 오르가눔」,「노트르담 오르가눔」의 형태로 발전한다. 그리고 12세기에「콘둑투스」(Conductus), 13세기 후반에「모테트」(Motet) 형식의 다성음악이 출현한다.

  12세기 중반부터 13세기 말에 이르는 시기는 음악사적으로「아르스 안티카」(Ars Antiqua) - 작곡에 있어서「구식예술」, 또는「구식방법」이라는 말로써, 14세기의「아르스노바」(Ars Nova),「신예술」에 대비하여 근대학자들이 붙여준 이름이다. - 라는 이름으로 알려져 있으며, 다성음악이 급속히 발전한 시기이다.

  다성음악의 첫 작곡가로 알려진 페로틴(Perotin ; 1183(?)∼1238 ; 노트르담 악파의 대표적 거장)의 작품과 이 시대의 어느 작품도 라이센스 레코드로 출반되어 있지 않다.

3. 14세기의 음악

  주로 종교음악에 국한되어 작곡된 음악들이 14세기에 들어서며는 세속음악이 훨씬 많이 작곡된 것이 이 세기의 특징이며 음악의 주도권은 프랑스와 이탈리아에 있었다. 프랑스의「아르스 노바」의 지도적인 작곡가는 기욤 드 마쇼(Guillaume De Nachaut ; 1304(?)∼ 1377)이다. 그의 음악 작품은 그 당시에 통용되었던 거의 모든 음악 형식들이 포함되어 있으며, 보수적인 경향과 진보적인 경향을 함께 내포하고 있다. 마쇼는 단성음악의 비렐레(Virelai) 및 다성음악적 비렐레와 22곡의 론도(Rondeaux)를 작곡했으며, 발라드(Ballade)양식을 완성하였다는 것이 마쇼의 가장 중요한 업적 중의 하나이다. 14세기에서 가장 유명한 음악작품은 마쇼의「메스 드 노트르담」(Messe De Notre Dame ; 우리 성모의 미사)로서 미사의 일상부에 4성부 곡을 붙인 것이다. 14세기에 이탈리아에서는 마드리갈(Madrigal), 카치아(Caccia), 발라타(Ballata)형식의 세속음악이 출현한다. 대표적인 작곡가는 프란체스코 란디니(Francesco Landini ; 1325∼1397)이다.

  [레코드] : 작곡가를 알 수 있는 가장 오래된 음악이 마쇼의「2개의 가곡」(2 Polyphonic Lais)이다. 3성부로 쓰여진「샘물의 노래」와 2성부로 쓰여진「위로의 노래」는 그가 작곡한 19개의 가곡에 들어있는 작품이다. 곡은 그레고리안 성가의 단성음악에서 시작하여, 단순하게 병진행하는 다성음악에서 한 단계 발전되었음을 쉽게 감지할 수 있다. 14세기 후반의 발라드, 론도, 비렐레를 한데 묶은 6명의 작곡가의「사탄의 노래」(Ce Diabolic Chant)는 14세기에 형성된 음악양식을 들려주고 있다.

4. 르네상스(Renaissance) 시대

  1450년부터 1600년에 이르는 시기를 오늘날의 음악사에는「르네상스」- 재생 부활이라는 뜻 - 시대라고 부르는데, 이 용어는 중세 말에 대한「고딕」, 그리고 17세기와 18세기 초에 대한「바로크」라는 말과 함께 미술사에서 빌려온 말이다. 르네상스 기간 중 음악의 발전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인중의 하나는 음악 인쇄의 시작이며, 다성음악이 완벽의 극에 달하였다. 미사, 모테트, 마드리갈, 세속 합창곡을 중심으로 여러 가지의 기악 음악이 눈부시게 발전아혔다. 이것들은 17세기 바로크음악의 성장과 발전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르네상스 초기의 네덜란드 태생의 요하네스 오케켐(Johannes Okeghem ; 1430∼1495)은 4성부 취급의 가능성을 처음으로 개발하였으며, 이 때에 시도된 성악 4부 합창은 오늘날까지도 합창의 주류를 이룰 만큼 그 공헌은 지대하며, 다성 구조에서의 겅부의 균질성은 이 때 확립되었다.

  동 시대인에 의하여 "우리 시대 최고의 음악가"라는 찬사를 받은 죠스껭 데쁘레(Josquin Des Pres ; 1440(?)∼1521)는 프랑스에서 태어났다. 그의 음악 양식은 그의 스승 오케켐의 구성미를 교묘하게 융합시켜 복잡한 가운데 간단 명료함을 보여주고 있다. 18곡의 미사곡, 104곡의 모테트, 75곡의 세속음악등을 작곡한 그를 마르틴 루터(Martin Luthe ; 1483 - 1546 ; 독일의 종교 개혁가)는 "음표들은 그가 원하는 대로 움직인다."라고 높이 찬양하였다. 죠스깽의 미사들은 전통적인 형식과 관습에 집착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개인적인 특징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분야이지만, 그가 가장 독창적인 공헌을 한 분야는 모테트이다.

  네덜란드 태생의 헨리쿠스 이사악(Henricus Issac ; 1450∼1517)은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의 가사로 된 많은 수의 노래를 작곡했으며, 각 국가의 음악적 영향들을 모두 자신의 양식 속으로 흡수해 들인, 성격에 있어서는 어떠한 작곡가보다도 국제적이었다.

  15세기에 독일에서는 다성 리이트(Lide ; 노래)라는 뚜렷한 형식이 생겨나게 되었다. 다성 리이트의 첫 진정한 대가는 이사악이지만, 루드비히 젠플(Ludwig senfl ; 1486∼1542 ; 스위스태생 독일에서 활동한 작곡가)에 이르러 리이트는 예술적인 완성의 절정에 도달하였다. 젠플의 리이트의 상당수는 가사에 사용한 언어만을 제외한다면, 모든점에서 모테트의 우수한 재현이라고 할 수 있다.

  바하 이전의 작곡가로서 로마악파의 지오반니 삐에르루이지 다 팔레스트리나(Giovanni Pierluigi Da Pelestrina ; 1526∼1590)만큼 그 이름이 알려진 사람은 없으며 팔레스트리나의 음악 기법만큼 면밀하게 연구된 작곡가는 없다. 그의 음악의 리듬은 모든 16세기 다성음악과 마찬가지로, 각 성부 자체의 리듬과, 성부들의 화성적 대위법적 조합의 결과인 집합적인 리듬의 화합이다. 그의 미사곡은 오늘날까지도 가톨릭 교회 음악의 이상적인 형태로 숭앙을 받고 있으며, 그의 작품으로는 100여곡의 미사, 200여곡의 모테트, 마드리갈등이 있다.

  팔레스트리나와 버금가는 로마악파의 중요한 작곡가는 스페인 사람 토마스 루이스 드 빅토리아(Tomas Luis De Vitoria ; 1549∼1611)다. 1565년 로마에 와서 팔레스트리나에게서 음악을 배운 것 같으며, 그의 작품은 종교적인 것 뿐이다. 그의 양식은 팔레스트리나의 것과 비슷하지만, 빅토리아는 그의 음악에 신비적인 강렬함을 불어 넣어 독자적이면서도 전형적으로 스페인적 특질을 갖게 할 때가 많다.

  르네상스 시대에 프랑스 - 네덜란드 작곡가의 계보를 잇는 최후의 작곡가는 올란도 디 랏소(Orlando Di Lasso ; 1532∼1594)이다. 팔레스트리나나 빅토리아와는 달리 세속적인 작품이 많으나, 랏소 역시 종교음악의 위대한 작곡가에 속한다. 팔레스트리나가 미사곡의 대가인데 비하면, 랏소의 주된 영광은 모테트이다. 그의 모테트는 그 전체형식에 있어서나 그 세부에 있어서나 가사가 갖는 장면과 극적인 측면으로부터의 접근에 의해 생성되고, 화성적 리듬은 급격하고 불규칙할 때가 많다.

  16세기 중엽경의 영국의 주도적인 작곡가는 토마스 탈리스(Thomas Tallis ; 1505∼1583)이며, 그의 음악적 소산은 16세기 초와 말의 영국의 음악 양식을 연결시켜 주며, 1575년에는 윌리암 버드(William Byrd ; 1542∼1623)와 합작으로 영국 국교회를 위하여 성가와 찬송가 모음집을 출간했다. 버드는 카톨릭 신자로서 미사곡을 많이 남기고 있으며, 그의 미사곡은 팔레스트리나의 작품과 함께 종교적인 면에서 뿐만 아니라 예술적인 면에서 가장 높이 평가받고 있다.

  르네상스의 가장 인기 있던 가정용 독주 악기는 500년이상이나 유럽에서 사용하여 왔던 루우트(Lute)였다. 이 분야의 주도적인 작곡가는 영국의 죤 다울란드(John Dowland ; 1562∼1626)이며, 그 당시 유럽전역에서 루우트 연주의 최고의 명인으로 이름을 떨쳤다.

  16세기와 17세기, 즉 르네상스와 바로크를 연결해 주는 인물은 서양음악사에서 중요한 작곡가의 하나로 꼽히는 이탈리아의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 Monteverdi ; 1567∼1643)이다. 그의 작곡은 많은 분야에 걸쳐 있지만, 마드리갈이 그의 대표적인 작품이라 하겠다. 마드리갈이라는 이름은 14세기에도 발견되지만 16세기의 마드리갈과는 이름만 같을 뿐, 음악의 한 종류이자 동시에 시의 형태를 가졌던 14세기의 마드리갈과는 공통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마드리갈은 몬테베르디에 이르러 절정에 달하였다.

  [레코드] : 오케켐의 작품은 국내에 출반된 것이 없고, 죠스껭의 한 장의 레코드에 4성부의「미사 디 다디」(Missa Di Dadi)와「미사 애도」(Missa Faisant Regketz)가 실려 있다.

「미사 애도」는 세속적인 요소와 종교적인 요소들의 동기들이 매혹적으로 혼합된 작품으로 선율과 정선율이 번갈아 쓰여지고 있다. 곡은 그레고리안 성가에 포함된 미사와는 분위기가 완연히 다르며, 마쇼의 가곡에서 느낄 수 있는 세속적인 리듬이 포함되어 있다.

 「막스밀리안 Ⅰ세의 궁전음악」(Music at the Court of MaximilianⅠ)이라는 레코드에는 이사악과 젠플의 노래가 들어 있다.

  팔레스트리나의 200여곡의 모테트 중 유명한 5성 모테트가「사랑의 정원」(The Garden of Love)이라는 제목하에 2매로 출반되어 있고, 4성부의 미사곡과 4∼6성부의 모테트가 또 한 장의 레코드에 같이 들어있다. 유구한 역사와 전통을 가진 세계 최고의 대학인 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에 소속된 킹스 대학 합창단(Choir of King's College, Cambridge)의 합창으로 팔레스트리나와 빅토리아의 미사곡과 모테트가 각각 들어있어, 두 작곡가의 음악을 비교할 수 있어 좋다. 빅토리아의「성가 합창곡 모음집」(Choral Works) 2매의 레코드에는 1605년 스페인 여왕 마리아를 위해서 작곡한 레퀴엠(Requiem ; 죽은 자를 위한 미사곡)과「오 얼마나 영광스러운가」(O Quam Gloriosun) 같은 제목의 미사곡과 모테트가 케임브리지 성 요한 합창단(Choir of st. John's college, Cambridge)의 합창으로 발매되어 있는데, 이 미사곡과 모테트는 앞의 킹스 대학 합창단이 부른 빅토리아의 미사곡과 모테트와 같은 음악이다. 바로트 이전의 음악으로 유일하게 연주자를 비교 감상할 수 있다.

  랏소가 남긴 수 많은 교회 음악중의 걸작으로, 창조적 재능이 만들어 낸 6성부 및 7성부의「성 베드로의 눈물」과,「참회시편가」와「모테트」가 소개되어 있다.

  다울랜드와 버드의「루우트 음악」(RCA)이 쥴리안 브림(Julian Bream ; 1933 ; 루우트 연주)과 피터 피어스(Peter Pears ; 1910∼ ; 테너)의 연주로 나와 있다.

 「켐브리지 킹스 대학의 합창」레코드 안에 탈리스의「거룩하신 주」(Sancte Deus) 한 곡이 들어있다.

  몬테베르디의 8천의 마드리갈은 제2권중 18곡(CBS)과 제 7, 8권에서 발췌한 11곡(Virtuose Madrigale), 전쟁 마드리갈(Madrigal of War) 8곡으로 3매가 출반되어 있다.

 「르네상스 애창곡 모음」(Renaissance Favorites ; CBS)와「스페인의 르네상스 음악」(Spanish Music in the Age of Exploration ; CBS)에는 르네상스 시대에 활약한 많은 작곡가의 음악과 민요가 실려 있다. 부담없이 쉽게 들을 수 있어 상쾌하다.

  모든 문화사조(文化思潮)의 발생·소멸과 같이 음악 양식이나 형태의 변화도 서서히 복잡한 방식으로 다른 시기, 다른 장소에서 이루어진다. 르네상스 말기의 자취가 17세기에도 상당히 지속되며, 바로크의 많은 특징적인 면모가 16세기 말 훨씬 전에 두드러지게 나타나기 시작한다. 하지만, 음악사적으로는 1600년에 르네상스 음악은 막을 내리고, 바로크 음악, 고전주의, 낭만주의 음악을 거쳐 20세기 현대 음악에 이르고 있다.

* 본고는 서양음악사(그라우트 저 ; 서우석 역), 간추린 음악사(양일용, 권태하 공역), 음악의 발견(공석준 저), 음악감상론(이홍렬, 이성삼 공저), 음악대사전(미도문화사)과 레코드의 해설면을 참고했으며, 여기에 소개된 레코드는 특별히 레코드 제작회사를 표시한 것을 제외하고는 모두 (주)성음에서 출반되었다.

<관련 레코드 No>

RD 605.  RD 560.  RP 355.  RD 598.  RD 580.  RD 337(2 LP).  RG 893.  RD 616.  RD 496(2 LP).  RG 238.  RD 601.  RG 239.  RD 553.  RG 240.  RD 544.(라소 : 성베드로의 눈물)  RG 091.  RG 221.  RG 195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