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수집노트   "베토벤 교향곡 5번"과의 '운명'적인 조우                                                        

글: 정 창 관 (홍콩샹하이은행 부장)


  자질구래한 물건들을 미련없이 버리지 못하고 모아두는 사람들이 있다. 나 역시 그러한 사람중의 하나이다.

  학창시절에는 우표수집에 몰두했고, 직장생활 초기에는 동전과 지폐수집에, 현재는 레코드 수집에 정열을 쏟고 있다. 우표나 화폐수집은 수집 그 자체가 목적이지만 레코드 수집은 음악에 깊이 몰두하다보니 자연히 모으게 된 수집이다.

  나는 현재 국내에서 발매된 클래식 라이센스 레코드는 초기에 발매된 19장의 앨범만 빼고는 거의 다 - 소품은 제외하고 - 가지고 있다. 나의 수집노트에서 빠져 있는 19장은 몇 년을 찾아 헤메었지만 아직도 구하지 못했다.

  그러나 내가 음악동호인들 사이에 기인(?)으로 통하게 된 것은 베토벤이 1808년에 작곡한 교향곡 제5번 C단조, 작품번호 67번 '운명'에 대한 남다른 집착 때문이다. "운명은 이렇게 문을 두드린다"라는 유명한 에피소드를 가지고 있고, '빠바바 밤 - '이라는 유명한 4음의 동기로 시작되는 운명은 동서고금을 통하여 가장 유명한 곡이 아닌가 싶다. 동기발전식의 서양음악 구조를 이해하는 데 이 곡은 전형으로 꼽힌다고 한다.

 내가 특히 열성적으로 수집에 열을 올리고 있는 레파토리는 비발디의 '4계'와 구스타프 홀스트의 '행성'이다.

  15년 전, 고전음악의 깊은 길로 들어서게 되면서 처음 구입한 레코드가 에르네스트 앙세르메가 스위스 로망드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운명'과 비발디의 '4계'였고,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을 보는 것이 또한 나의 취미였던 관계로 홀스트의 '행성'을 수집하게 되었다. 베토벤의 '운명'은 전세계적으로 약 200종류가 발매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이는 모든 클래식 레파토리 가운데서 가장 많은 숫자임에 틀림없다. 국내에서도 라이센스 레코드 중 가장 많은 23매의 '운명'이 지휘자에 따른 다양한 해석과 연주로 소개되고 있다.

 나는 LP로 발매되지 않은 7매의 CD를 포함하여 118매의 '운명'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에는 3종류의 SP 레코드도 들어있다. 이들 레코드의 수집에 얽힌 에피소드도 레코드 숫자만큼이나 많다.

  세계에서 최초로 만들어진 '운명' 레코드는 1913년 아르쿠르 니키쉬(1855∼1922, 독일의 지휘자)가 베를린 필을 지휘한 SP 레코드이다. 당시의 녹음기술로는 대규모 관현악단의 연주를 30여분간 담는 것은 매우 어려웠다. 이것은 '운명'을 녹음한 최초의 레코드임과 동시에 최초의 교향곡 레코드이다. 스테레오 분리도 안되고 잡음도 많지만 역사적인 레코드로서 가치가 크다. 내가 가진 니키쉬의 연주는 도이치 그라모폰사(DG)가 베를린 필 창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발매한 전집에 들어있는 레코드로서 SP 레코드 4∼5매를 LP로 복각한 것이다. 이 레코드를 구하지 못해 애태우고 있는 나를 몇 년간 지켜보던 음악동호인이 어렵게 구해 주었는데 이 레코드를 얻었을 때 나는 천하를 얻은 것보다 더 기뻤다.

  '운명'을 말할 때 빌헬름 푸르트벵글러를 빼놓을 수 없다. 푸르트벵글러만큼 '운명'을 많이 지휘하고 많은 레코드를 남긴 사람도 없다. 그는 2차 세계대전 전까지 148회, 후에는 73회나 공식적인 연주를 했고, 레코드는 10매를 남겼다. 나는 그 중 5매를 가지고 있는데 나머지를 찾아 백방으로 수소문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운명'의 명연주로 1954년에 푸르트벵글러가 빈 필을 지휘한 EMI 엔젤 레이블의 레코드를 추천하고 있다. 이 레코드는 엄청난 스케일과 튼튼한 조형성으로 도저히 기교만으로는 이룰 수 없는 경지를 구축하고 있는 명반이라고 평가받고 있다. 1986년에 국내의 오아시스 레코드에서 라이센스 발매한 이 레코드는 음질에 약간 문제가 있지만 지금도 구할 수 있다.

  내가 수집한 '운명' 중에는 외무부장관을 일시 겸직한 적이 있는 송요찬 전 내각수반이 소유하던 레코드도 3장 들어있다. 그분의 아들이 내가 속해 있는 한국아마추어천문학회에서 함께 활동하고 있는 관계로 나에게 선물한 것이다. 나는 그분을 직접 뵌 적은 없지만 이 레코드를 듣고 있으면 그분과 운명적으로 어떤 보이지 않는 선에 의해 연결되어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질 때가 있다.

  예술가들은 그들이 창작한 음악과 문학과 미술의 세계에서 자신들의 자취를 남긴다. 수집가들도 자신의 수집품을 후세에 전함으로써 흔적을 남긴다. 나도 언젠가는 음악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사람에게 나의 수집품을 남겨 그들과 보이지 않는 언어로 대회하고 싶다.

  한 2년 전쯤에 음악잡지사에 근무한다는 사람으로부터 간곡한 부탁을 받은 적이 있었다. 그분은 오토 클렘페러(1885∼1973, 독일의 지휘자)의 레코드를 수집하고 있는데 유독 베토벤의 5번 교향곡만 구하지 못했으니 내가 가진 레코드를 팔 수 없느냐는 것이었다. 나는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수화기를 놓아 버렸지만, 수집가의 입장에서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분의 안타까운 심정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다음날, 내가 먼저 전화를 걸어 이것은 내가 아끼는 레코드라 팔 수는 없고 그냥 드리겠다고 했더니 그분은 그렇게 할 수는 없다고 고집하여 생각한 것이 레코드를 서로 교환하는 것이었다. 나는 홀스트의 '행성'을 수집하고 있었으므로 그 레코드와 바꾸었다. 그리고 3개월 후에 외국에서 근무하다 돌아온 동생이 무심코 사 온 레코드 중에 오토 클렘페러 레코드 수집가에게 준 바로 그 '운명'이 들어 있는 것을 보고 묘한 생각에 잠긴일이 있다.  

  내가 가진 '운명' 중 3종류의 SP 레코드는 모두 판소리 레코드를 수집하는 사람과 교환한 것이다. 그분은 판소리에 심취하여 판소리 레코드를 모으고 있는데 내가 가지고 있던 판소리 LP 레코드 3장과 맞바꾼 것이다. 리하르트 스트라우스가 베를린 스테이트 오페라 오케스트라를 지휘한 것과 프란츠 샬크(1863∼1931, 오스트리아의 지휘자)가 빈 필을 지휘한 레코드, 그리고 푸르트벵글러가 베를린 필을 지휘한 레코드로서, 객관적인 가치는 곡 하나가 4∼5매로 구성된 3종류의 SP 레코드가 훨씬 크지만 그분은 그에 구애받지 않고 맞바꾸어 준 데 대해 매우 감사하고 있다. 자기가 가진 것이 다른 사람의 손에 들어갔을 때 더 소중하게 간직될 수 있다면 기꺼이 양도할 수 있는 것이 진정한 수집가의 자세가 아니겠는가.

  일반적으로 베토벤 교향곡 제5번을 '운명'이라고 표기한 레코드는 드물다. 주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제작된 레코드에 '운명'이라는 이름이 표기되고 정작 독일에서는 그냥 5번 교향곡으로 나오는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요즘은 독일에서도 'Die Schicksals Symphonie' 즉 '운명' 교향곡으로 표기된 레코드를 가끔 볼 수 있다. 영어로는 'Fate'로 표기된 레코드가 한 장, 'Fortune'으로 표기한 레코드로 한 장 있지만 대개는 '교향곡 5번'으로 적혀있다. 내가 수집한 118매의 '운명'중에는 지휘자가 밝혀져 있지 않은 레코드도 한 장 있다.

  내가 '운명'을 수집한다는 것이 음악지나 음악동호인들을 통해서 잘 알려진 탓인지 이제는 얼굴도 모르는 사람한테서 '운명' 레코드가 있으니 한번 보라는 전화가 걸려오는 일도 있다. '운명' 레코드를 찾아 헤메는 나의 여정은 앞으로도 계속되겠지만, 레코드를 수집하는 목적은 어디까지나 음악을 듣기 위한 것임을 항상 잊지 않고 있다.                       - 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