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음악신문이 만난 사람 국악음반최다보유자 정창관                                                                                                         

"국악의 숨결을 수집한다"

시사음악신문(2001년 2월 7일)


  한 분야의 전문가가 되는데는 그만큼 뜸들이는 시간이 필요하다. '한국고음반연구회'의 창립멤버인 정창관 선생도 예외가 아니다.  87년부터 국악 음반수집을 시작한 그는 지금까지 1천5백여장의  국악음반을 수집한 국악음반 최다 보유자다. 지금가지 국내에 나온 국악음반을 모두 보유했다고 해고 과언이 아니다.

 음반수집이 취미인 사람이야 많지만 그의 경우는 일반인들과 차원이 다르다. 그래서 그는 본업인 HSBC은행 수출입부 부지점장이란 직함보다 국악음반 전문가로 더 잘알려져 국악을 하는 이는 모르는 이가 없을 만큼 유명한 사람이다.

  음악에 대한 관심은 어렸을 때부터 많았다고 한다. 동아대 시절 팝송을 즐겨듣던 그는 첫 직장인 한일은행에서 입사하고부터 클래식에 눈을 돌렸고, 클래식 음반 3천여장을 차곡차곡 모았다. 87년 '판소리나 한번 들어 볼까' 라는 단순한 생각으로 클래식 음반을 사던 단골 레코드가게를 들렀다.

 『남의 나라 음악들이 한쪽 변면을 가득 채운 것에 비해 판소리음반은 한 장도 찾을 수 없었고, 국악음반은 10장도 채 되지 않아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때부터 음반점과 청계천의 중고음반점을 돌아다니며 SP와 LP를 가리지 않고 음반을 모으기 시작했습니다.』

  이렇게 발품으로 국악음반을 모으던 중 유성기 음반을 수집하고 있던 배연형 휘경여중 교사와 한소리회의 양정환씨를 자연스럽게 만나 교류하게 된다. 그 당시 서양음악계에서도 유성기판과 예전의 음반을 복각하는 작업이 활발한 시기였기 때문에 이들 3인방은 '국악 유성기음 복각'를 모의하고 이듬해 4월 신나라 레코드사에 무작정 찾아갔다. 『모든 음원을 제공할테니 국악복각음반을 만들자고 제안했지만 당시는 국악음반을 제대로 만들어내는 곳도 없었고 판매 역시 부진을 면치 못했기 때문에 반응이 부정적이었죠. 그래서 발매는 하돼 판매 되지 않을 경우 모든 음반을 인수하겠다는 조건으로 계악을 했습니다.』

  이렇게 탄생한 음반이 '판소리 5명창'으로 당시 국악음반으로는 경이로운 기록인 5천5백장이란 판매고를 올렸다. 국악음반에 대한 잠재적인 시장이 있음을 인식한 신나라레코드는 계속 국악음반을 내고 있으며, 성음 서울음반 지구레코드사 등도 국악음반에 눈을 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판소리 5명창'이 발매직후 3인방은 어렵게 수집한 국악음반들을 자료로 남기고자 당시 유성기음반의 최고권위자인 이보형선생을 회장으로 '한국고음반연구회'를 조직한다. 이선생에게 대학 국악과에서 수학하던 석, 박사 과정의 학생들이 자연스럽게 연구회에 가입하면서 지금은 15명의 회원이 활동하고 있다.

  한국고음반연구회는 매년 학술지 '한국음반학'과 복원시킨 음향자료를 발간하고 있으며, 고음반에 녹음된 음악의 복원연주회 및 고음반 과련 자료 전시회 등을 매년 개최하고 있다. 『오래전에 녹음된 국악과 요즘에 음악을 들어보면 같은 곡이라고 음악이 많이 느려지고 어두워진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박자의 변화는 한정된 시간안에 한곡을 다 담아내기 위해 의도적으로 빨리 연주했다고 추정되는데, 음악적 분위기의 변화에 대한 정확한 이유는 찾아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암울한 시대를 거치면서 시대상황이 음악이 반영되지 않았나 추측만 될 뿐이죠.』

  정창관 선생은 국악음반 수집하면서 각종 잡지에 국악음반평을 기고하면서 국악에 남다른 열정과 실력을 인정받아왔다. 숨겨진 명인들의 음반을 제작하는일에 앞장서고 있는 그는 강순영 김영택 조순애 등 명인들의 소중한 음반을 출반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기도 했다.

  국악수집 분야에서도 독보적인 존재인 그는 지난해 9월 국악음반에 대한 자료를 집대성한 홈페이지 (www.kukakcd.pe.kr)를 개설해 운영하고 있다. 그가 직접 제작한 이 사이트는 15년간 각종 잡지에 기고했던 그의 국악음반에 대한 소개와 국악음반에 대한 자료가 총망라되어 있다.

 신보에 대한 평이 일주일에 한번씩 업데이트되기 때문에 그는 요새도 새로 나온 국악음반을 듣고 이에 평을쓰는데 많은 시간을 투자한다.

  국악은 선호도에 양극이 있는 음악이다. 어떤 이들에게는 필사적으로 좋아하기도 어떤 이들은 아예 외면하기도 한다. 정창관 선생은 대중적인 인지도가 떨어지는 국악의 아름다움을 알리고 국악의 발전과 보급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는 국악계에서 도서관같은 존재로 국악사랑을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