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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창관  (2012-07-08 오후 1:53:09   : 1549, : 417)
     http://www.gugakcd.kr
     국악FM방송 국악특강 - 정창관의 국악사랑(7월 7일 & 16일)
지난 6월 26일 녹음으로 7월 7일 오전 11시, 7월 16일 오전 11시에 국악방송을 통하여 방송됩니다.

1부는 국악으로의 귀향(7일)
2부는 한민족 최초의 음원(16일) 각각 1시간입니다.

많은 관심 바랍니다.

어느 분이 제 특강을 듣고 글을 올렸습니다. 과찬이지만 인용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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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인들이 잊고 사는 거인 ‘ 정창관 ’

2012년 6월 26일 국악방송 특강, < 국악 음반 수집가 정창관의 국악사랑 > 에 참석하여 한사람의 ‘ 국악계 거인 ’을 만나게 되었고 그로부터 받은 감동을 주체 할 수 없어, 길고 긴 무딘 글로 남깁니다. 저의 글을 읽어 보시는 또 다른 사람에게 국악계 ‘ 거인 정창관’님을 알릴 수 있어 참 행복합니다.

한국인 미국 유학생, 안정식, 유희철, 신원미상 1인, 이 세 명이 1896년 7월 24일 실린더 음반으로 녹음한 한민족 최초 국악음원을 찾아내 자비(自費)를 들여 1차 3000장, 2차 1000장 총 4000장의 복각 음원을 세상에 무료로 선물한 ‘ 정창관 ’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사라져버렸을 국악 고 음원들을 찾아 1987년 최초로 복각을 시작하여 지금 까지 체계적으로 정리하고 보급 장려 하면서 국악음반사 역사를 만든 ‘ 정창관 ’

1987년에 SKC에서 국악 첫 CD 음반이 출반된 이래 지금 까지 모든 국악 음반의 99%이상인 4500여장을 소장 정리 하여 국악음반 도서관이자 뿌리이며 기둥으로 살아있는 역사가 되어버린 ‘ 정창관 ’

1984년에 창간하여 1995년에 폐간한 서양음악음반 소개 월간지 ‘ 음악동아 '를 찾아가 이때까지 전혀 없었던 국악음반 평을 써보겠노라고 제안 해 1994년 최초로 ‘ 음악동아 '에 국악음반 평을 싣게 하여 이후 국악음반 평론 이라는 단어를 만든 ‘ 정창관 ’

정창관 국악CD음반세계( www.gugakcd.kr ),와 정창관의 국악이 보인다. (www.gugakebook.com) 인터넷 홈페이지를 만들어 누구나 무료로 국악을 쉽고, 편하고, 부담 없이 접근할 수 있게 하고 국악전문가들에게는 국악공부의 길라잡이 역할을 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주었고 ‘ 한국실연가 협회’에 자료를 기증하여 국악인들의 저작료 계산 시 절차간소화에 도움을 준 ‘ 정창관 ’

모두가 본인 스스로 노력으로 찾아내고 만들어 국악계에 최초라는 단어를 수없이 만들어 가고 있는 한국최고 국악음반 전문가 이지만 20대 중반 까지는 국악을 전혀 모르는 문외한으로 서양클래식음악에 심취한 음악광 이었다.

1975년 군 제대 후에는 서양 클래식 유명 동호회 등에 적극적으로 참여 하며, 더욱 더 서양음악을 즐기고 지성인이 서양 클래식을 즐기는 것은 지위와 가치를 갖추는 것이라 생각했다. 이때 서양 지휘자 싸인 을 받는 것은 그에게는 커다란 기쁨 이었다.

정창관이 국악으로 ‘ 귀향’은 우연 이었다. 1987년 어느 날, 국악(판소리)도 한번 들어볼까 하는 단순한 생각에 종로3가 신나라레코드점을 찾았다. “수천 장의 음반 중에 국악 음반은 10장도 되 않았고 본인이 찾는 국악음반도 없었다.

여기서, “남의 음악을 지금까지 좋아했는데 우리 음악은 들을 수도 없다” 몹시 놀랐고 충격을 받은 ‘ 정창관 ’은 나는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고 있는가? 심한 자성을 한다, 이 무렵 그는 서양음반을 2000여장 소장 하고 있었다.

이후 국악 중고음반 사기를 시작으로 닥치는 대로 국악을 듣고, 국악 관련 책을 읽고, 국악연주회도 시간을 내어 열심히 다니면서 국악으로 귀향이 시작되었다. 이렇게 대한민국 국악음반 역사가 ‘ 정 창관 ’으로 부터 최초로 정리되기 시작 되었다.

이 무렵 유성기음반을 수집하고 있던 휘경여중 교사 배연형씨와 한소리 회(국악동호회) 양정환씨를 자연스럽게 만나게 되었고 “ 유성기음반을 복각하면 듣고 싶은 음악을 마음껏 들을 수 있지 않을까”하는 생각에 1988년 4월 19일 동숭동 인켈 오디오월드 음악실에 모여 미 참석 후원자 6명과 함께 국악복각판을 만들기로 결의를 한다.

처음에는 복각판을 만들어봐야 일반인들에게 판매될 것 같지는 않으니까 자신들이 만들어 그냥 소장하기로 했다가, 발매를 하되 판매가 되지 않을 경우 모두 본인들이 인수를 하겠다는 조건으로 모든 음원을 제공하고 신나라레코드사와 국악음반복각 계약을 하게 된다.

그 당시 국악음반은 1000여장도 판매가 되지 않던 상황으로 국악음반 제작자는 돈이 안 되니 제작을 꺼리고 국악애호가들은 국악음반이 없어 구입을 하지 못하는 악순환 속에 빠져 있었다.

그런데 장당 200원씩의 인세를 받은 최초의 복각 국악음반인 첫 lp판 판소리 5명창( 이동백, 송만갑, 정창렬, 김창환, 김창렬,)이 5천5백장이 판매되어 인세로 110만원을 받았다. 이후 신나라레코드는 계속 국악음반을 발매하였고 성음, 서울음반, 지구레코드 등 국내 굴지의 음반회사에서도 유성기판 복각 음반을 만들게 되었다.

1989년 3월1일 체계적인 국악 고음반정리와 학문적 연구를 위해 국악인 이보형님을 회장으로 추대하여 국악 전문가와 애호가가 조화롭게 어울린 ‘ 한국고음반연구회 ’를 창립하고 그 해 덕수궁에서 제1회 복원연주회와 학술회의 개최, 고음반 관련 자료 전시회를 열었다.

제 2회 때 세계적으로 ‘ 음반학 ’이라는 용어와 학술지를 최초로 탄생시킨 ‘ 한국음반학 ’ 국악 학술지 발간을 시작하여 1995년부터 부록으로 cd를 제작 하고 있다.

‘ 한국고음반연구회 ’에서는 학술지인 한국음반학과 복원시킨 음향자료의 발간, 고음반에 녹음된 음악의 복원연주회와 학술회의 개최, 고음반 관련 자료 전시회 개최 등 지금까지 꾸준히 이어 오고 있다.

1998년부터 독립음반을 한 번도 제작 하지 않은 60세가 넘는 국악인으로 사망 후 당사자 음악이 전승 가치가 있는 분을 원칙으로 ‘ 정창관 국악 녹음집 ’ 제작을 시작하여 현재까지 매년 1장씩 14장을 제작하고 있다.

세계 유명 도서관 국악음반 기증 사업과 인도한국 문화원에‘ 한국악’ 자료 보내기 운동을 하고 있고 1993년 일제 강점기 victor 음반사 국악 유성기 음반 587매를 일본에서 찾아내어 2011년 10월 17일 문화재로 등록되었고 12월 21일 국립민속박물관에 기증 하게하였다.

국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세상이야기를 하면서 국악인을 도우는 모임 ‘ 서초국악포럼 ’ 좌장으로 회원들이 3개월에 각자 10만원씩 모아 전통음악 연주자나 단체로 국가 또는 기업도움을 받는 단체 제외, 회원과 관련단체 제외를 원칙으로 국악 연주자 연주회 지원금을 신청 받아 선별하여 도아 주고 있다.

국악을 사랑하는 모든 사람들이 늘 고마워해야 하고, 이 시대에 함께 할 수 있음을 행복으로 품고 살아야 하는 국악계 ‘ 거인 정 창관 ’ 하지만 국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그 존재를 대수롭지 않게 잊고 살기에 ‘ 정창관 ’ 이야기를 글로 남겨 전하며 나는 참 행복하다.

2012년 7월 2일
무상초들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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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송관련하여 사진도 올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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