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 한국 최초의 음원 출반한 정창관                                                                     

                                                                                                                      연합뉴스 2007년 7월 29일 문화 - 음악/미술
                      


 * 2007년 7월 29일, 연합뉴스에 나온 기사입니다. 기사 중 잘못 된 내용은 빨간글로 첨가하였습니다.
   전화 인터뷰 중에서 기자가 잘못 이해한 것 같습니다.

    아래는 http://www.yonhapnews.co.kr/culture/2007/07/29/0905000000AKR20070727196100005.HTML 에서 가져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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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민족 최초 음원 입수한 정창관씨

(서울=연합뉴스) 111년간 보관돼온 한민족 최초의 음원을
미국 의회도서관으로부터 입수한 정창관씨.

 

(서울=연합뉴스) 경수현 기자 = "공연장에서 판소리 '심청전'을 듣다보면 눈물이 글썽해질 때가 있지만 오페라는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어요".

   1896년에 녹음된 우리 민족의 노랫 소리를 발굴, 최근 CD로 출반해 화제를 모은 정창관(56)씨는 지금은 내로라하는 국악 마니아이지만 20년전까지도 클래식 음반을 3천여장이나 보유했던 클래식 애호가였다.

   정씨가 서양음악에서 국악으로 '변절(?)'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28일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국악의 매력을 한껏 풀어놨다.

   우선 처음에는 클래식 마니아가 됐던 사연부터 물었다.

   "1975년 군에서 제대한 뒤에 지성인이 듣는 음악이라고 해서 클래식을 듣기 시작했어요. 수집벽이 있어서 HSBC은행에 다니면서 한 달에 40∼50장씩 음반을 샀고 10년가량 모으니 3천여장이 된 것이죠".

   외국의 유명한 오케스트라 내한공연은 거의 빠짐없이 따라다녀 지휘자 로린 마젤, 유진 올만디 등과 같은 거장으로부터 사인까지 받아냈을 정도로 그의 클래식 사랑은 대단했다고 한다.

   그의 취향이 국악으로 돌아선 것은 수집벽의 영향이 초기에는 컸다.

   "1987년에 판소리 한번 들어보려고 당시에는 많은 음반을 보유한 종로3가 신나라레코드 음반점에 갔는데 없었어요. 그래서 다른 음반점까지 종로 3가를 모두 뒤졌는데 국악 음반이 총 5종류밖에 없어 충격을 받았죠".

   당시 음반제작사들은 돈이 안 된다고 생각해 만들지 않았고 나름대로 있던 국악 애호가는 음반이 없어서 못 듣는 상황이었다는 것.

   그래서 다른 애호가들과 함께 힘을 합쳐 신나라레코드를 통해 1988년 발매한 음반이 '판소리 오명창'이었다. 이 음반은 일제때 축음기 등에 녹음된 이동백의 새타령 등 명창 5명의 판소리를 음반으로 복구한 것.

   정씨가 국악을 "좋은" 음악으로 받아들인 것도 이때부터로 판소리의 매력에 우선 빠졌다.

   "당시 신나라레코드에 1천장을 만들어 팔리지 않으면 재고분을 떠맡겠다는 조건을 제안해 출시됐는데 공식적으로만 5천500여장이 팔렸어요".

   이어 그는 1989년 2번째로 이화중선의 판소리 음반 제작과 한국고음반연구회(회장 이보형) 모임 창설에 참여했다.

   그는 아직도 대금 산조와 함께 판소리를 좋아하는 국악 장르로 꼽고 있지만 서서히 정악이 좋아지고 있다고 한다.

   "정악은 클래식의 바흐 음악에 비유할 수 있어요".

   그의 국악 사랑은 현재 보유한 국악 CD의 물량에서 확인된다. 무려 3천여장으로 1980년대 후반부터 나온 국악CD는 거의 모두 보유하고 있는 셈이라고 한다.

   또 '정창관의 국악CD음반세계'라는 인터넷 홈페이지(www.gugakcd.kr)를 운영하고 있으며 지난 2005년에는 KBS국악대상 출판.미디어 부문 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난 24일에는 그가 미국의회도서관에서 입수한 한국 최초의 음원을 CD 3천장에 담아 출반했으며 이미 2천장을 무료 배포했다.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의 지원을 받았다지만 자비도 들었다.

   너무 비싼 취미 활동이 아닐까.

   "골프는 안 쳐요. 골프 치는 비용이면 됩니다"라고 그는 잘라 말했다.

   그는 전문성도 인정받아 현재 FM라디오 국악방송(수도권은 99.1MHZ)에서 매주 수요일 오전 8시15분에 '정창관의 음반에 담긴 소리향기'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다.

   "5년간 매주 새 음반 3장씩을 소개해왔어요. 현재도 국악음반이 잘 팔리는 것은 아니지만 연주나 녹음 활동이 활발하다는 의미죠".

   그에게 국악의 특별한 매력을 물었다.

   "국악에 발을 들여놓다 보니까 클래식 공연장에는 잘 안 가게 돼요. 얼마전에 공짜 표가 생겨 오페라를 보면서 내가 옛날에 왜 좋아했었지 하는 생각을 하기도 했죠".

   클래식에 비해 국악의 어떤 점이 좋은 것일까.

   "클래식 공연에 가면 박수 칠 시간도 생각해야 하고 부자연스럽지만 국악 공연은 편합니다. 또 육자배기를 들으면 슬퍼지고 사물놀이는 흥이 나지요." 국악이 더 가슴에 와닿는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클래식과는 완전히 등을 돌렸을까.

   "아직도 음반은 가끔 들어요. 클래식 음반은 절반 정도 팔아 이제는 1천500장 정도 갖고 있지만 처음에 접한 클래식인 베토벤의 교향곡5번 운명 등은 어제도 들었어요".

   그는 국악과 클래식의 우열을 말하기는 어렵다는 입장이다.

   "개인마다 느끼는 매력이 다를 수 있어요".

   그에게 좋아하는 국악인을 꼽아달라고 부탁했다.

   "판소리의 경우 임방울, 가야금 산조(잘못된 내용/안향련은 판소리 소리꾼임)는 안향년, 민요는 전태용 등이지요. 전태용의 창부타령, 김명신의 가야금 산조를 담은 '갓 스물에 숨어버린 산조' 등은 추천해주고 싶은 음반이에요".

   정씨는 현재 파루크코리아 감사로 직장생활을 하면서 동호인 단체인 서초국악포럼의 좌장, 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 로버트 김 후견인 동아리 모임 회원(현재는 회원이 아님) 등으로도 활동중이다.

   evan@yna.co.kr                    (끝)
<저작권자(c)연합뉴스. 무단전재-재배포금지.>                                                   2007/07/29 10:30 송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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