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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명[부제포함] 소정 김정수 대금독주 II <만년장환지곡>
음반 번호 AURTA-009*L , CD 3 매
제작 / 기획사 신나라/Aura Corea
발매 연도 2007
구 분 일반반
분 류 정가
업데이트 일시 2007-11-25
비 고
* DVD크기 별도정리. * 2008년 4월 7일 미의회도서관 및 영국도서관 기증. * 2020년 4월 1일 일본 동경예술대학 음악대학 기증(배송비 윤인숙 후원)



 
소정 김정수 대금독주 II <만년장환지곡>

■ CD 1 : 평조
1. 다스름 Daseureum 01:14
2. 초수대엽 Chosudaeyeop 05:33
3. 이수대엽 Isudaeyeop 09:16
4. 중거 Junggeo 08:43
5. 평거 Pyeonggeo 07:49
6. 두거 Dugeo 07:07
7. 삼수대엽 Samsudaeyeop 06:22
8. 소용이 Soyong-i 05:27
9. 우롱 Urong 05:19
10. 우락 Urak 04:33
11. 언락 Eonrak 05:56
12. 우편 Upyeon 03:07
13. 반엽 Banyeop 05:37 TOTAL 76:08

■ CD 2 : 계면조
1. 다스름 Daseureum 01:01
2. 초수대엽 Chosudaeyeop 05:33
3. 이수대엽 Isudaeyeop 08:51
4. 중거 Junggeo 07:00
5 평거 Pyeonggeo 07:35
6. 두거 Dugeo 06:52
7. 삼수대엽 Samsudaeyeop 06:03
8. 소용이 Soyong-i 05:59 TOTAL 48:57

■ CD 3 : 계면조
1. 언롱 Eonrong 06:07
2. 평롱 Pyeongrong 06:33
3. 계락 Gyerak 05:40
4. 편락 Pyeonrak 05:07
5..편수대엽 Pyeonsudaeyeop 05:00
6. 언편 Eonpyeon 04:26
7. 태평가 Taepyeongga 06:21 TOTAL 39:17

* 대금:소장 김정수.
* Executive Producer_Lee, Dong-myung 이동명
* 녹음 : Recording & Mixed at Beeznuri Recording Studio(2007.10.15)

* 만년장환지곡은 정가 중 가곡의 다른 말입니다.
 
* 추계예술대학교 국악과, 소정 김정수 교수의 2번째 음반이다. 1집은 작년 12월에 나온 소정 김정수 대금독주 '가진영산회상'(신나라/Aura Corea) 이다. 가곡이 대금독주로 고스란히 들어 있다. 대금 독주의 가곡 음반으로는 처음 선보이는 음반이다.(2007.11.25)
 
* 해설서에서 :

小亭 金 晶 洙
Sojung Kim Jung-soo

학력
1967. 2 국립국악고등학교 졸업
1971. 2. 26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국악과 졸업
1973. 2. 26 서울대학교 대학원 국악학과 졸업

수상경력
1998. 12. 11 KBS국악대상 대상
1999. 12. 10 KBS국악대상 공로상
1999. 12. 31 문화관광부 장관상 표창

주요경력
2005.1.1~2006.12.31 KBS국악관현악단 운영위원장 역임
2000.3.1~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교육대학원 원장
1996.5.21~현재 서울국악관현악단 예술총감독
1989.5.1~현재 한국국악교육학회 상임이사
1988.1.10~현재 한국청소년국악관현악단 단장
1982.12. ~현재 한국창작음악연구회 회장
1980.3.1~ 현재 추계예술대학교 국악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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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金晶洙), 지금 이 시대의 김천택
- 작은 정자에서 울리는 넉넉한 젓대소리 - 윤 중 강 (음악평론가)

대금, 인연의 악기

소정(小亭) 김정수(金晶洙).
그는 1947년 10월8일 부산시 동구 수정동(水晶洞)에서 태어났다. 출생지에서 맑은 '정(晶)'자를 택하고, 광산 김씨(光山金氏) 항렬에서 물가 '수(洙)'자라는 돌림자를 택해서 이름이 지어졌다. 그에게서 이런 내력을 들으면서, 마음으로 놀라면서 그리고 생각했다. '이 분은 평생 대금()과 함께 할 인연(因緣)이었구나!'

여기서 광산 김씨의 내력을 살펴야 한다. 한국의 대표적인 가문의 하나인 광산 김씨는 '광김(光金)'이라 불린다. 신라 신무왕의 셋째아들 김흥광(金興光)을 시조로 한다. 흥광은 장차 나라가 어지러워질 것을 예견하고, 무진주 서일동 (현, 담양군 대전면 평장동)으로 이주해 학문을 닦으며 살았다. 무진주는 훗날 광산(光山)으로 불리게 된다. 신라는 삼죽(三竹, 대금 중금 소금을 말함)을 배스린 땅이다. 그리고 흥광이 터를 닦은 전라남도 담양은 대나무의 고장이다. 김정수가 평생 대금()을 가까이 한 것은 이런 '피의 줄기'와 '땅의 기운'과 통한다고 생각된다.

김정수는 또한 이번에 환갑(環甲)을 맞으면서 만년장환지곡(萬年長歡之曲)을 택했다. 대금으로 전곡(全曲) 녹음을 했다. 만년장환지곡은 가곡(歌曲)의 아명(雅名)이다. 이런 가곡을 얘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김천택(金天澤)! 영조 때의 선가(善歌)로, 가집(歌集) '청구영언(靑丘永言)'을 펴냈다. 김천택 또한 광산김씨다.

김정수의 가곡 및 대금에 관한 깊은 인연은 이렇게 김천택으로 거슬러 올라갈 수 있고, 또한 가까이는 김기수(金琪洙, 1917 - 1986)를 살필 수 있다. 역시 광산 김씨인 김기수는 김정수의 스승이다. 이왕직 아악부(현, 국립국악원) 출신인 그의 전공도 대금이다. 그는 대금정악(正樂)을 비롯한 정악악보를 펴냈고, 가곡(歌曲)에 관심이 많아 그가 부른 노래가 지금도 감동으로 다가온다. 김정수라는 인물은, 이렇듯 지연(地緣)과 혈연(血緣)과 관련해서, 김천택 - 김기수의 대물림으로 생각한다. 김정수는 우리 시대의 김천택이요, 한국의 근현대음악사에서 김기수가 해놓은 일들을 또 다른 방향으로 발전시킨 인물로 자리매김할 수 있다.

이제 다시 그의 이름을 거론해야 한다. 김정수라는 이름 자체도 대금과 통한다. 대금의 특징의 하나는 '맑음'에 있다. 대금의 명곡에 청성자진한입(淸聲曲)이 있는데, 맑은 청(淸)자를 쓴다. 맑고 높음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 청(淸)은 또한 맑을 정(晶)과 통한다. 아울러 그의 돌림자를 주목해야 한다. 동양철학에서 오행(五行)은 다섯 가지 기운이다. 나는 대금을 수(水)의 악기로 생각한다. 대금은 사람의 입김[水]이 닿아서 소리를 만들어낸다. 대지에 습기가 촉촉한 날이거나, 물가[洙]에서 대금소리는 더욱 아름답다. 대금에 필수적인 청공의 재료가 되는 갈대도 강가[洙]에 존재하고 있지 않은가! 이런 모든 것들을 아우르며 생각할 때, 김정수에게 있어서 대금()은 삶의 순리(順理)라 하겠다.

최초(最初), 그에 의한 '처음'

김정수 일가는 한국동란 서울수복 후 부산에서 서울로 이주한다. 그는 세검정초등학교를 거쳐서 용강초등학교를 졸업하고, 국악사양성소(현, 국립국악중고등학교)에 진학한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부터 대금을 전공했다. 그리고 서울대학교 국악과와 같은 대학원을 졸업했다.

김정수는 특히 1960년대 중반부터 1970년대를 거쳐서, 대금연주자로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을 했다. 1967년부터 1971년까지 서울대학교 국악정기연주회에선 그는 늘 독주자 혹은 협연자로 나섰다. 그는 대학원에서는 음악학을 전공했다. 당시 서울대학교 국악과에는 실기전공이 없었다. 아울러 1970년대 국립국악원에서 국악연구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당시 연구원으로 박동진(작고, 판소리 인간문화재), 김용만(작고, 작곡가 및 지휘자 및 배우), 이상규 (현 한양대교수, 작곡가 및 지휘자), 김정수가 있었다. 이렇게 그는 국악원 연구원으로 근무하다가, 1980년 3월 우리나라 대금 전공자로서는 처음으로 추계예술학교 국악과 교수로 임명되었다. 추계예술학교는 1974년에 국악과가 처음 생겼다. 추계예술대학은 1980년대 초반 전국적으로 국악과가 많이 신설되기 전, 서울대, 한양대, 이화여대와 함께 젊은 국악인들을 배출해낸 중추적 역할을 했다.

이상규 작곡의 '대바람소리'가 있다. 작품도 우수하지만, 김정수가 없었다면 이 작품은 빛이 날 수 없었을 거다. 전통적인 정악어법에 충실하면서, 현대적인 음악을 만들어낼 수 있는 소양이 없다면, 이 작품은 불기 어렵고, 또 불 수 없었다면 이작품은 그토록 빛나기 어려웠을 거다. 김정수는 대금을 서서 연주한 최초의 인물이기도 하다. 제 2회 대한민국음악제 때였다. 이 작품은 이상규가 작곡하고, 김정수가 초연했는데, 두 사람의 스승인 김기수에게 헌정한 작품이기도 하다. 김정수는 이상규와 함께 당시 카덴차를 의논하면서 이 작품의 완성도를 높였다.

최선(最善), 그에 의해 만들어진 단체

김정수는 1980년대와 1990년대에 걸쳐서 국악계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돌이켜보면 그는 늘 그의 입장에서 당시 국악계에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추진해야 할지, 늘 최선책을 마련하기에 고민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김정수하면 다음의 세 단체가 연결된다.

한국창작음악연구회, 한국청소년국악관현악단, 서울국악관현악단, 이들 단체는 정부와 공공기관의 특별한 지원을 받지 않으면서도, 지금까지 그를 중심으로 해서 주변 인물들이 협력해서 잘 이끌어 온 단체들이다. 그리고 이 단체의 특징은 모두 한국음악의 '창작'적인 발전에 큰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한국창작음악연구회'는 그 이름부터 관심을 둘 필요가 있다. 1960년대 당시만 하더라도 '신(新)국악'이란 용어가 쓰였다. 그리고 1974년 국립국악원에 의해 '한국음악창작발표회'라는 창작곡 발표회가 있었다. 그러다가 이 단체가 '창작음악'이란 용어를 쓰면서, 이런 용어가 정착하게 된 것이다. 비로소 1980년대에는 '전통음악'과 '창작음악'을 나누어서 생각하게 된 것이다.

한국창작음악연구회는 '새로운 수제천을 위하여'를 표방하면서 출발했다. 1982년 12월 1일, 한국창작음악연구회의 첫 번째 연주회가 국립극장 소극장(현,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열렸다. 기존의 곡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작품을 위촉해서 연주했다. 한국창작음악연구회는 창작곡의 레퍼토리 확산에도 기여했다.

한국창작음악연구회는 또한 '국악가요'라는 용어를 표방하고 처음으로 연주한 단체이기도 한다. 이 단체는 그간 진지한 기악곡도 많이 연주했지만, 대중성이 있는 노래곡을 발표한 바 있다. 바로 KBS-FM과 조우한 '국악가요를 위한 FM국악무대'가 그것이다. 여기서 '국악가요'란 용어가 공식적으로 처음 쓰였다. 당시 KBS-FM 한신평 PD가 제안한 것이다. 이 연주회에서는 김영동 작곡의 '한네의 이별'과 같은 곡을 연주했고, 당시 대중들의 관심이 있었던 가수 중에서 이미지가 좋은 가수였던 윤시내, 송창식, 김학래, 김범룡, 김수철 등과 함께, '국악가요운동'을 펼쳤다.

한국청소년국악관현악단의 출발은, 획기적인 사건(事件)이자 또한 사건(史建)과 같은 일이었다. 지금 많은 청소년국악관현악단 형태가 있는데, 이런 청소년국악관현악단의 시발이 바로 김정수를 중심으로 이루어졌다. 국악관현악단의 새로운 역사가 건설되는 순간이었다.
1988년 1월 8일, 한국청소년국악관현악단이 창단됐다. 롯데호텔 크리스탈볼룸에서 젊은 연주인 110명으로 출발했다. 김용진, 이재숙, 강사준, 김정수(용인대), 윤미용, 박인기, 양연섭교수등이 지도교수로 맡았다. 지도교수 및 참여인원 등을 통해 학맥을 뛰어넘어서 범(汎) 국악적인 악단을 지향했음을 알 수 있다. 한국청소년국악관현악단은 같은 해 4월 6일 창단연주회(국립국악원 소극장, 김정수 지휘)를 시작으로 꾸준하게 연주회를 계속해 왔다. 국악관현악의 연주기회가 많지 않은 대학생들에게 국악관현악을 접할 수 있는 좋은 기회를 제공했다.

그런데 이러한 청소년국악관현악단은 이렇게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국악관현악을 접할 수 있는 기회만을 제공한 게 아니다. 오히려 국악계의 지휘자를 길러내는 산실(産室)이기도 했다. 지금 국악계에서 활동하는 많은 사람들이 청소년국악관현악단과 인연을 맺었다. 양주섭, 채치성, 이준호, 임재원, 김승근, 원 일, 손범주, 김성경, 조광석, 권성택 등이 그렇다. 이들은 모두 청소년국악관현악단과 인연을 맺고 있다. 양주섭은 지금 해외에 체류하고 있고, 그 외의 인물들을 모두 국악계에서 각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서울국악관현악단은 이런 청소년국악관현악단이 모태가 되어서 성장한 단체다. 1996년 1월 창단이래, MBC마당놀이 등의 반주를 맡게 되면서, 자생(自生)의 돌파구를 마련하고자 노력하고 있다.

초심(初心), 늘 '처음처럼'

김정수는 대금연주가로 활동하면서 틈틈이 작곡을 병행했다. 그는 초심(初心)이란 제목으로 시리즈로 작품을 썼다. 대금을 잡았을 때의 '첫 마음'을 그대로 간직하겠다는 뜻이다. 이런 마음으로 쓴 작품이기에, 그의 작품에서 정갈함을 느낄 수 있다. 현재까지 발표된 초심 시리즈의 최종 작품은 국(菊)이다. 국화를 뜻하는데, 이 작품은 다악(茶樂)에도 속하는 작품이다.

김정수를 논할 때, 가장 비중있게 다룰 것이 바로 다악(茶樂)이다. 한국창작음악연구회는 1998년 '차와 우리음악의 다리 놓기'를 슬로건으로 내놓으면서, 본격적으로 다악(茶樂) 계발에 힘을 기울였다.

다악은 '국악의 생활화' 혹은 '정악(正樂)의 생활화'적 측면에서도 무척 중요한 작업이다. 아울러 다악의 성과는 또 다른 면도 있다. 한국적인 퍼포먼스를 가능하게 한 것이다. 흔히 퍼포먼스하면 서구적인 것이고, 현장성이 강조되는 즉흥적인 것으로 여긴다. 하지만 다악에서의 그것은 다르다. 다례(茶禮)가 기본이 되고, 다무(茶舞) 등이 펼쳐지면서, 철학적인 깊이를 느낄 수 있는 한국적인 퍼포먼스를 가능하게 했다. 다악은 이렇게 음악을 기본으로 하고, 거기에 춤과 노래, 미술 등이 만나는 작업을 해오면서, 한국적인 미학과 철학의 기본을 국악기를 중심으로 경험하게 했다. 그리고 그런 중심에 바로 김정수가 있다.

이런 다악의 작품 중에서 주목할 작품으로 '달빛이 시냇물에 휘영청'을 꼽을 수 있다. 김성경이 만든 작품으로 대금과 거문고 2중주곡이다. 이는 다악을 논할 때 가장 비중 있게 다루어야 할 작품으로 생각한다. 다악적인 정서가 듬뿍 느껴지는 곡이다. 나는 이 음악을 들으면서 그야말로 소정(小亭)에서 따스한 차를 마시면서 다악(茶樂)을 통해 삼매(三昧)에 빠지는 상상을 해본다.

보스 (boss)적 아우라(aura)를 느끼다.

평생을 '대금'과 '정악'을 함께 한 소정 김정수 선생이 올해 환갑을 맞았다. 2007년 올해는 '보스의 해'이기도 하다. 2007년 1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는 2007년을 '보스의 해'(The Year of the Boss)로 규정하면서, 몇 개의 보스상(boss像)을 제시했다.
올 한 해를 보내면서, 나는 '보스'에 관해 생각했다. 첫째, 진정한 보스란 과연 어떤 사람인가, 둘째, 우리 국악계는 제대로 된 보스가 존재하는가? 마치 화두(話頭)와 같았다. 아쉽지만, 국악계에 보스는 많지 않다. 정확히 스스로 보스인 척 하는 사람은 있어도, 그를 진정 보스라고 부르기엔 주저하게 된다. 리더십을 제대로 갖춘 보스, 말을 아끼는 보스, 행동이 신중한 보스는 누구인가? 특히 예술계를 이끌어갈 창조적 소수(creative minority)란 누구인가?

보스에 대한 회의의 문턱에서, 김정수에게서 이런 '보스'적인 요소를 발견한다는 건 기쁨이다. 전술한 것처럼, 그는 한국창작음악연구회 - 한국청소년국악관현악단 - 서울국악관현악단을 통해서, 많은 지휘자와 연주자를 길러냈다. 그는 많은 연주자, 작곡가, 지휘자 들이 공존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한 것이다.

아울러 그는 지금도 가능한 무대에서 현역으로서의 연주가의 역할에 충실하려고 노력한다. 김정수가 홍주의(紅紬衣)를 입고 대금정악을 연주할 때, 짙은 감청색의 두루마기를 입고 다악(茶樂)을 연주할 때, 나는 그에게서 보스적인 아우라(aura)가 전달됨을 느낀다.

소정(小亭)이 녹성(綠星)을 : 작은 정자에서 초록별을 보다.

김정수는 이렇게 다양한 활동을 하면서, 국악계의 새로운 흐름을 주도했다. 그러나 그의 음악의 뿌리는 역시 녹성이었다. 그는 국악사양성소(현 국립국악중고등학교)시절부터 대금 성적에 관한한 수석을 놓친 적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그의 대금과 관련해서 두 단어가 떠오른다. '존중'과 '열정'이다. 그는 스승에 대한 존중이 누구보다 각별하다. 많은 사람들이 녹성의 가락을 불고 있지만, 그는 특히 녹성과 오랫동안 함께 하면서, 그의 가락을 실제 배우고 익혔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슬하(膝下)란 말이 있지 않은가! 그는 늘 녹성의 '무릎 아래'에 있고자 했다.

출중한 대금연주자들이 많다. 많은 사람들이 녹성 문하에서 배우다 일찍 떠나가기도 했고, 다른 음악에 치중하기도 했다. 반면 김정수는 녹성과 늘 함께 하고자 했고, 또한 녹성이 떠난 후 이 가락에 대한 애착이 더욱 남달랐다.

김정수는 이렇게 평생 녹성(綠星) 가락에 대한 애착이 많았다. 특히 요즘은 더욱 그렇다. 1970년대와 1980년대 국악의 주요한 연주회에선 늘 녹성의 '청성곡'이나 '상령산'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요즘 녹성의 대금을 음반자료 등을 통해서 듣는 일도 흔치 않다. 방송을 통해서도 녹성의 대금은 자주 접하기는 어렵다. 녹성은 근현대 한국음악사에서 대금에 관한 가장 빛나는 별이다.

그는 이미 2006년 이런 녹성의 가락을 충실하게 재현한 '가진영산회상'음반을 내놓은 바 있다. 이어서 이렇게 가곡 전 바탕을 녹음한 '만년장환지곡'을 세상에 내 놓는다. 이런 작업은 우리나라 근현대 음악사에서 큰 의미로 기록될 일이다. 이 음반은 우리나라 정악사(正樂史) 혹은 풍류사(風流史)에서 빛나는 음반이 될 것이다.

그는 이번 음반 작업을 하면서, 자신의 가락을 한 군데도 넣지 않았다. 오로지 스승의 가락을 그대로 충실하게 재현했다. 소정(小亭)은 이른바 녹성(綠星)에 의해 '정해진 바', 소정(所定)의 연주를 들려준다. 현재 대금정악에 대해서 관심이 덜 해지고, 아울러서 대금정악의 본연인 편한함 혹은 꿋꿋함보다는 잔가락이 많아지는 추세에서, 김정수의 이런 작업은 더욱 의미가 있다. 첫째는 녹성의 가락을 보존하고, 둘째 대금정악 연주에 있어 하나의 표준을 제시했다는데 뜻 깊다. 과거 김천택이 <청구영언>을 펴낼 때의 심정이나, 지금 김정수가 <만년장환지곡>을 내놓는 마음이나 크게 다르지 않다.

김정수의 아호(雅號)는 설곡(雪谷) 전효준(田孝準, 1913~2001)이 지어주었다.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남창가곡(男唱歌曲)의 예능보유자(인간문화재)로, 김정수의 고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기도 했다. 소정은 작은 정자란 뜻이다. 정자는 머무는 곳이다. 그의 대금음악이 작은 정자를 가득 채우고 있다. 그리고 그 가락이 유유히, 넉넉하게 흐르고 있다. 그는 이렇게 대금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이 몸 뿐 아니라 마음을 머물 수 있는 거처를 마련해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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