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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명[부제포함] 강권순 여창가곡 <천뢰>-하늘의 소리-
음반 번호 CNLR-0423/4-2 , CD 2 매
제작 / 기획사 C&L Music
발매 연도 2004
구 분 일반반
분 류 정가
업데이트 일시 2004-08-21
비 고
* 2008 문화체육관광부 전통예술과 국악음반 해외보급사업 기증음반 * 2009년 문화체육관광부 공연전통예술과 국악음반 해외보급사업 기증음반 * 2013년 4월 5일 World Musc Center in Korea 기증.



 
강권순 여창가곡 <천뢰>-하늘의 소리-

CD 1 :
1. 우조 이수대엽 (羽調 二數大葉·Ujo Isudaeyeop) 10:20
- 버들은 실이 되고…
2. 우조 중거 (羽調 中擧·Ujo Junggeo) 9:19
- 청조(靑鳥)야 오도고야…
3. 우조 평거 (羽調 平擧·Ujo Pyeonggeo) 8:18
- 일소백미생(一笑百媚生)이…
4. 우조 두거 (羽調 頭擧·Ujo Dugeo) 6:19
- 일각이 삼추(三秋)라 허니…
5. 반우반계 반엽 (半羽半界 半葉·Semi Ujo/Gyemyeonjo Banyeop) 6:41
- 남 하여 편지 전치 말고…
6. 계면조 이수대엽 (界面調 二數大葉·Gyemyeonjo Isudaeyeop) 9:30
- 언약이 늦어가니…
7. 계면조 중거 (界面調 中擧·Gyemyeonjo Junggeo) 8:30 총 59:17
- 산촌에 밤이 드니…

CD 2 :
1. 계면조 평거 (界面調 平擧·Gyemyeonjo Pyeonggeo) 7:45
- 초강(楚江) 어부들아…
2. 계면조 두거 (界面調 頭擧·Gyemyeonjo Dugeo) 6:42
- 임술지추(壬戌之秋) 칠월기망(七月旣望)에…
3. 우조로 도는 평롱 (平弄·Gyemyeonjo-to-Ujo Pyeongnong) 6:34
- 북두칠성(北斗七星) 하나 둘 셋 넷…
4. 우조 우락 (羽調 羽樂·Ujo Urak) 6:42
- 바람은 지동(地動) 치듯 불고…
5. 반우반계 환계락 (半羽半界 還界樂·Semi Ujo/Gyemyeonjo Hwangyerak) 6:39
- 앞내나 뒷내나 중(中)에…
6. 계면조 계락 (界面調 界樂·Gyemyeonjo Gyerak) 5:37
- 청산(靑山)도 절로 절로…
7. 계면조 편수대엽 (界面調 編數大葉·Gyemyeonjo Pyeonsudaeyeop) 3:34
- 모란은 화중왕(花中王)이요…
8. 계면조 태평가 (界面調 太平歌·Gyemyeonjo Taepyeongga) 7:31
- (이랴도) 태평성대(太平聖代)…

Alternate Track
9. 계면조 평롱 (界面調 平弄·Gyemyeonjo Pyeongnong) 6:59 총 58:36
- 북두칠성(北斗七星) 하나 둘 셋 넷…


◆ 소리:강권순(홈피 : http://www.kskang.pe.kr )

협연진 :
◆ 정재국(피리) :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정농악회 회장
◆ 박용호(대금) :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교수
◆ 박문규(장구) : 월하문화재단 부이사장
◆ 이오규(거문고) : 용인대학교 국악과 교수
◆ 곽태규(단소) : 국립국악원 창작악단 악장
◆ 양경숙(해금) : 국립국악원 정악연주단 지도위원
◆ 이지영(가야금) : 용인대학교 국악과 교수

* 녹음:2004.1.11. 국립국악원 기악녹음실.

 
* 강권순의 첫번째 독집음반이다. 지난 6월 5일, 남산골 풍류음악회 '느리고 아름다운 서울 풍류' 연주회 때 소개된 음반인데, 비수기를 피하여 정식적으로 9월부터 판매되는 음반이다. 산천초목으로 많은 팬을 가지고 연주자의 음반으로 늦은 감이 있다. 해설서 자세하고 영어도 있다. 반주자 대단하다.(2004.8.21)
 
* 홍보 및 해설서에서 :

우리의 옛 선비들이 수양을 위해 부르던 정가곡의 원형을 그대로 재현한 음반이 선을 보인다.
정악가곡의 젊은 명인 강권순이 발표한 여창가곡 「천뢰(天籟):하늘의 소리」가 바로 그것. 제주민요 산천초목‘ 영화’꽃잎의 주제곡 등으로 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강권순은 그 음악적 뿌리를 가곡에 두고 있는 정악인으로서, 가곡의 최고봉 고 김월하 선생의 제자이기도 하다. 그러한 이유로 “나의 독집 앨범은 반드시 원형을 그대로 살려낸 정통 가곡음반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바탕으로 오랜 준비기간과 남다른 노력 끝에 완성된 음반이라 더욱 의미가 크다. 여창가곡의 오묘한 미학을 폭넓게 펼쳐온 남다른 열정과 소신의 세월에 국악계가 화답하듯, 정재국(피리), 박용호(대금), 박문규(장구) 등 정악계 일곱명의 기라성같은 거장들이 흔쾌히 반주자로 나서서 협연하고 있다.

‘마음의 음악’이라는 정악의 특성을 감안할 때 녹음장소로는 일반 녹음실보다 연주자들에게 편안함과 경건함을 동시에 제공할 수 공간이 필요했다. 이러한 장소를 찾는데 어려움을 겪던 중, (다소 뜻밖이지만) 최적의 장소가 ‘국립국악원’ 연습실이라는 결론에 이르렀다. 녹음은 일체의 오버더빙이나 편집이 없이 라이브 다이렉트 레코딩 방식으로 진행함으로써 현장감과 자연스러움을 최대한으로 살리는데 역점을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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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권순은 여창 가곡에 일생을 건 보기 드문 소리꾼이다. 오늘날 알아주는 사람이 너무 적은 그러나 참으로 보배로운 우리의 여창 가곡이 강권순과 같은 순교자적 정신과 사명감을 지닌 소리꾼에 의하여 지켜지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 황병기 (이화여자대학교 명예교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강권순의 소리에서는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그녀만의 독특한 세계를 엿볼 수 있다.
태고의 숨결인 양 한국인의 생명력이 그대로 살아 숨쉰다.”
- 김경배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보유자, 경북대학교 국악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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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권순의 여창가곡을 들으며

황병기 (이화여대 명예교수, 대한민국예술원 회원)

조선조 선비들이 애호하던 대표적인 노래가 바로 가곡(歌曲)이다. 따라서 가곡에는 선비들이 생각했던 음악미의 이상이 담겨 있다. 가곡이야말로 우주를 품 안에 끌어안는 것 같은 엄청난 음악적 너비를 지니고 있고 평화롭고 심오한 서정 노래의 극치라 할 수 있다.

가곡은 선비의 노래인 만큼 남창(男唱)이 위주이기는 하나, 여창 가곡 또한 고고하고 독특한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 성악이 대부분 남녀창의 구분이 없지만, 여성 특유의 고매한 아름다움을 온전히 살린 여창 가곡이 따로 있다는 것은 참으로 희한하고 소중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강권순의 여창 가곡 음반을 듣고 특히 '우락(羽樂)', '편수대엽(編數大葉)'과 '태평가(太平歌)' 등에서 감명을 받았다. 우락에서는 여창 가곡의 온갖 기교를 원숙하게 구사하는 솜씨가 놀라웠고, 편수대엽에서 부르는 꽃의 노래는 담박하면서도 시원한 창법이 출중했다. 태평가 4장에서 장인(長引)하는 임종(林鍾) 음을 들을 때에는 우리 선인들이 갈구하던 태평성대의 소리가 바로 이런 것이었구나 하는 감동을 느꼈다.

강권순은 여창 가곡에 일생을 건 보기 드문 소리꾼이다. 오늘날 알아주는 사람이 너무 적은 그러나 참으로 보배로운 우리의 여창 가곡이 강권순과 같은 순교자적 정신과 사명감을 지닌 소리꾼에 의하여 지켜지고 있으니 참으로 다행이다. 그의 이번 음반이 여창 가곡의 아름다움을 널리 알리고 보다 많은 애호가들을 확보하는 데 크게 기여하기를 바라마지 않는다.



여류가객 강권순의 예술세계

김경배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보유자, 경북대학교 예술대학 국악학과 교수)

20세기가 낳은 최고의 명가 김월하선생, 그를 가리켜 󰡒월하 이전에 월하 없고 월하 이후에 월하 없다󰡓고 한다. 그러나 한 시대를 풍미하던 선가의 빈 자리는 이제 한국 가단의 기라성 같은 그의 제자들에 의해 버팀목의 몫을 해내고 있다. 바로 강권순은 선생께서 아끼시던 제자였다. 그래서일까 나는 그녀를 대할 때면 스승을 닮은 그의 행동거지에서 선생의 청정한 성품과 숨겨져 있는 예술감각을 만나게 된다. 거기에 천부적으로 타고난 예술적󰡐끼󰡑까지 갖추었으니 그를 아끼는 지인들 사이에서 곧잘 작은 거인이라 애칭됨도 한낱 허사가 아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국립국악고등학교에서의 전공은 정가였다. 이어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한 후 가인으로 동분서주한 세월도 십수 년이 훌딱 지나 이제는 창공을 차고 자란 노송처럼 의젓함과 튼실함을 갖춘 중견 여류가객으로 성장하였다.

가곡은 예로부터 한낱 귀를 즐겁게 하는 외형적인 기교보다는 감정을 자제할 줄 아는 내면성에 중심을 두었다. 몸짓 고갯짓 한 번을 함부로 드러내지 않는 가객의 경건한 모습은 망아의 세계에 몰입한 도인처럼 은근하여 차라리 선경의 세계를 넘나드는 듯하다. 어쩌면 수신제가의 덕목과 비견될 수 있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강권순의 소리에서는 함부로 범접할 수 없는 그녀만의 독특한 세계를 엿볼 수 있다. 태고의 숨결인 양 한국인의 생명력이 그대로 살아 숨쉰다. 고전음악에서 창작음악에 이르기까지 막힘이 없어 더욱 절묘한 느낌으로 마음에 와닿는다. 여운을 머금고 실낱같이 곱게 늘여내는 내면의 소리, 폭포수가 뿜어내는 자연의 굉음처럼 가슴을 쓸어내리는 신비함이 살아 꿈틀댄다. 󰡐키고 조이는 소리󰡑, 󰡐당기고 푸는 소리󰡑, 󰡐놨다 폈다 하는 소리󰡑, 󰡐올리고 내리는 소리󰡑 모두 하나같이 자유자재다. 시김새 하나하나도 평범하면서도 모난 데가 없어 한국미의 극치를 보는 듯하다. 마치 소리의 모든 것을 이면에 숨겨 놓은 채 필요에 따라 하나 둘 빼어 쓰는 것은 아닐까.

창작곡 분야는 그를 제쳐놓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작곡자들이 선뜻 곡을 맡길 수 있는 창자(唱者)가 있다면 바로 그녀를 거론하는 것도 우연만은 아닐 성싶다. 이는 스승을 통하여 이어받은 예술가적 깊이와 천부적으로 타고난 가인의 본능적인 재질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믿어진다. 태고의 숨결, 청정한 여창 가곡의 메아리에 마음을 실어 다시 한 번 한국미를 담고 있는 강권순 여창 가곡의 진수를 마음껏 느껴 보았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 본다.

* 강권순 :

1969년 경남 고성 출생으로 중학교시절 서양 성악을 공부하던 중 교장선생님 권유로 국립국악고등학교에 입학한 이후 정가를 일관되게 전공하며 김월하선생, 김경배선생 등을 사사했다. 1991년 서울대학교 국악과를 졸업한 후 본격적으로 음악계에 등단 한 이래 현재까지 프리랜서로 활동하며 각종 아트 페스티벌 및 국가행사 등에 참여하여 정가공연뿐 아니라 유수 국악관현악단과의 협연 등 500여회의 국내 음악회에 참가하는 한편 아시아, 미주, 유럽 등지 20여개국에서 150여회에 달하는 해외공연도 병행하여 왔다. 이렇듯 활발한 연주활동을 통하여 국내외의 매스컴 및 예술관계자들로부터 정가의 매력과 예술성을 새롭게 일깨워내는 주역으로 평가를 받고 있다.

오랜 역사 속에서 고고한 맥을 이어온 정가로 이 시대의 청중과 새로운 호흡을 함께 나누고자 펼치는 그녀의 무대에는 항시 정악의 미학이 기초로 자리잡고 있지만 활동분야는 서구의 현대음악을 위시하여 무용, 영화, 방송드라마, 뮤지컬 등 인접 장르의 실용음악에까지 광범위하다. 이와 같이 폭 넓은 행적은 다양한 음악적 수용 폭과 자기 연마의 산물인 기량을 조화시킨 결과로 평가되는 동시에 전통의 기초 위에 자유롭게 꽃피워내는 예술혼의 발로라고 지칭되고 있다. 특히 강권순의 가창에서 발현되는 독특한 역동미는 관조적인 정악의 심연에는 생명의 미학이 순교자의 자유의지처럼 면면히 흐르고 있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그녀 특유의 음악적 키워드가 되고있다.
강권순은 탁월한 가창력과 천부적 해석력을 겸비하고 정가의 정통성과 멋을 현대적 음악 언어로 계승·발전시키고 있는 이 시대의 젊은 명인이다.

[주요 연주]
국내 * 1994년 부처님 오신 날 봉축 한마당󰡐자비의 나라로󰡑(불국사)
* 1995년 광복 50주년 기념 서사 음악극󰡐土地󰡑 주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
* 1998년 제1회 개인독주회 (문예진흥원 예술극장)
* 2002년 월드컵 기념 야외 총체 음악극󰡐고려의 아침'주연으로 출연(올림픽공원 야외무대)

국외 * 1995~1998 미국, 서유럽, 동유럽 순회공연 (국제문화교류재단 주최)
* 1994년 '소리여행' 유럽 동남아 순회 공연 (프랑스,싱가포르, 태국)
* 1997, 1998년 미국 Dragon Bond Rite (예술감독: 리처드 엠메르트)공연(뉴욕, 워싱턴 케네디센터, 홍콩)
* 1999, 2000년 Forgiveness(예술감독: Chen Shi Zheng ) 미국순회 공연
* 2000, 2002년 Dong Dong Touching the Moons(예술감독: Jin Hi Kim)
미국공연(뉴욕 The Kitchen Center, Washington 케네디센터, Springfield)
* 2003, 2004년 Global Soul(예술감독: Ong Keng Sen) 독일 베를린(5월), 싱가포르(6월),
스위스 취리히(8월), 네덜란드 로테르담(9월), 헝가리 부다페스트(2004년 4월)공연

********************

3년을 꿈꾸며 기다렸던 녹음 한마당-7시간

오대환 | (주)씨앤엘뮤직 음악감독

내가 강권순이라는 전통국악 가인과 인연을 맺게 된 계기는 아이러니컬하게도 10년 전 한 아방가르드 아트 페스티벌에서 만들어졌다. 당시 그녀는 이 페스티벌에서 현대무용을 위한 연주단의 일원으로 등단하여 독특한 창법의 구음을 들려주며 그 공연의 음향담당으로 참여하고 있던 나의 마음 깊은 곳을 자극하였다. 공연이 끝나고 그녀의 구음이 정악가곡에 기초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그날부터 나는 뒤늦게나마 가곡을 포함한 정악 전반에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다.

이후 이러한 관심 속에서 이 시대에 있어 정악은 우리의 선비문화에서만 찾을 수 있는 고고한 명상적 분위기와 절대미학적 예술안목을 고스란히 머금은 채 살아 숨쉬고 있는 화석과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또한 청중의 존재유무를 초월하여 자신의 바른 기운확립을 위한 수행의 주요한 일환으로 무색, 무취의 음악을 여유로운 호흡에 실어 능동적으로 펼쳐나가는 정악의 존재이유에 큰 호기심을 갖게 되었다. 한편으로는 들려준다는 명제가 전제되는 통상의 음악이 아닌 연주자 스스로 빠져들어 향유하기 위해 존재한다는 정악의 특성을 나름대로 분석하기에 이르렀다. 결국 연주석의 연주자 입장에서 듣게 되는 사운드를 들어야만 정악의 진미를 제대로 감상, 이해할 것으로 판단하고 이에 걸맞은 녹음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다.

이러던 와중에 3년 전 겨울의 마지막 추위가 남아 있던 어느 봄날 저녁 오랜만에 강권순씨가 자신의 앨범제작을 협의하겠다고 불현듯 나타났다. 그날 두 사람은 긴 대화를 나누지 않았지만 각자 서로의 의도와 계획을 쉽게 파악한 후 조만간 녹음에 착수하기로 약속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그날 이후 두 사람은 녹음의 착수시점에 대하여 간헐적으로 확인하며 3년을 보내게 되었다. 그토록 녹음을 시작하지 못한 유일한 이유는 남다른 연습량과 자기 관리로 소문난 가객 강권순이건만 자신의 준비상태가 미흡하다는 그녀 스스로의 판단 때문이었다. 그러던 중 몇 달 전 급기야 그녀는 치밀한 녹음준비를 하고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의 준비가 구체화되지 못한 상태이었다. 그녀는 겨울방학 기간을 이용하여 최고의 드림팀이라고 칭할 만한 연주진을 규합한 상태이었지만, 내가 정하여야 할 녹음장소를 겨울 추위라는 여건 속에서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었다. 나는 3년 전 그녀와 녹음을 약속한 이후 그 음악에 걸맞은 녹음장소 선정 및 녹음방법의 기준을 나름대로 정하고 있었다.

정악은 오랜 역사와 함께 우리의 실생활 속에서 펼쳐졌다는 전제하에서 한옥의 큰 방을 연상할 수 있는 공간, 즉 여음이 길지 않고 단정하며 합주시 각 악기의 음이 정확히 구분되어 들려지는 음향여건을 구비한 동시에 연주진들이 평온한 느낌을 갖고 동시녹음에 임할 수 있는 넉넉하고 포근한 공간을 염두에 두고 있었다. 이러한 속에서 각 연주자들이 만들어내는 기의 흐름과 각 파트별 음악적 에너지 교류의 진면목을 자연스럽게 고스란히 담아내고 싶을 뿐이었다. 그러한 녹음공간의 대상으로 정취 있는 전통가옥, 맑은 기운이 감도는 사찰 등을 여러 곳 탐방하였지만 겨울추위라는 그 시점의 여건 속에서 그런 장소에서 작업을 한다는 것은 많은 무리수가 따를 수밖에 없었다. 이러한 고민과 방황을 거듭하던 중 이 음반작업에 참여하는 연주진 모두가 국립국악원을 그야말로 친정집처럼 왕래하고 있다는 사실에 힌트를 얻어 장소물색의 방향을 바꾸게 되었다. 전통음악의 총본산으로서 상징성을 지니는 한편 연주진에게 안정적 연주분위기를 제공할 수 있는 국립국악원의 공간 중 청중위주의 연주회장이 아닌 연주자들의 공간인 연습실을 찾아 나섰다. 결국은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을 증명이나 하듯이 그곳에서 어렵지 않게 적절한 연습실 하나를 선정할 수 있었다.

2004년 1월 11일(일요일)에 난방과 습도조절을 위한 장비를 구비하여 놓고 3년을 기대 속에서 기다려온 녹음에 착수하기에 이르렀다. 녹음을 곡별로 진행했지만 곡 중간을 끊어서 녹음하거나 제작진의 취향에 맞는 연주가 나올 때까지 반복녹음을 하는 일은 없었다. 연주자들이 연주를 마치고 만족스러워 한 경우에는 재고의 여지없이 다음 작품을 진행했다. 다시 말해 청중위주의 매끄러운 앙상블을 찾기보다는 연주진 스스로가 연주 후 개운해하는 버전을 채택하는 데에 중점을 두었다. 결국 유쾌한 분위기 속에서 은밀한 연주회처럼 진행된 녹음은 7시간만에 만족스레 종료되었다. 이렇듯 일사천리로 녹음진행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은 정악을 평생의 반려자이자 과제로 삼고 항상 생활 속에서 연주하고 있는 원로거장 연주진께서 녹음의도를 이해, 수용하여 편안히 연주해 주신 덕분이라고 본다. 그러나 연주자들 간에 긴밀한 교류를 할 수 있는 거리로 좌정하여 동시녹음을 수행함에 있어 예상치 못한 상황이 돌발하기도 했다. 예를 들자면 강한 에너지로 밀어서 뽑아내는 육성의 경우 치아 사이에서 발생되는 파열음, 질박하고 강한 사운드를 지닌 국악기 특성상 각 악기의 음이 충돌해서 파생되는 돌연변이적 사운드 등이 간혹 이질감을 갖게도 했다. 그러나 이번 제작에서는 연주자 입장에서 실제 듣게 되는 이러한 다소의 파생음도 합주의 일부 요소로 의미를 부여하고 삭제·편집 없이 담아내었다.

그날의 녹음장면은 음악적 풍경에 머물지 않고 내공이 큰 원로 연주진들의 에너지가 총체적으로 이합집산하는 무술의 현장과도 같았다. 이 모든 것을 담아내기 위해 녹음 방법은 원포인트(one point) 스테레오레코딩에 주로 의존하였지만 연주석의 구석구석을 빠뜨림 없이 그려내기 위해 연주자별 마이크로폰 외에도 6개의 마이크로폰을 오버헤드(over heads)용으로 투입하였다. 이렇게 녹음한 결과 음원이 넉넉히 확보되어 믹싱과 마스터링을 다각도에서 기해 볼 수 있었기에 전자음향기기의 사용을 최소화 할 수도 있었다.

출반을 준비하는 지금 제작자로서 3년간의 기획을 한 순간이라고도 할 수 있는 7시간만에 끝내고 다소 허전한 느낌을 가졌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이제는 현장성과 자연미를 추구한 이 음반의 발표가 미니멀 뮤직의 극치이며 명상음악의 명실상부한 백미로서의 정악가곡을 많은 음악애호가들이 재인식하고 미학적으로 접근 할 수 있는 또 다른 통로가 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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