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설서에서 :
이희완의 생애와 예술세계
이희완은 1938년 경기도 화성군 매송면 어천리 태생으로, 강춘이라는 예명이 있다.
부친 이중식은 국악을 전문적으로 하지는 않았지만 누대(累代)로부터 국악을 한 집안답게 녹녹치 않은 재주를 지녔다고 하며, 모친 차씨는 무업에 종사한 이다.
이희완의 조부 봉운은 천하의 으뜸가는 줄타기꾼이었고, 조모 이춘삼은 창부타령 명창 김부전의 친정어머니인 곽명월의 조카이고, 이정업은 희완의 재당숙이다.
이렇듯 이희완은 부계 모계에서 물려받은 소중한 음악적 소양을 지니게 되었는데, 당시만 하여도 국악 하는 이들을 업신여기는 사회적인 풍토가 만연하여 음악을 도무지 배울 맘이 없었다.
그러나 대대로 물려온 음악적인 끼는 숨기지 못하는 법이어서 뒤늦게 소리를 배우게 되는데 희완의 첫 선생은 가곡, 가사, 서도소리를 잘한 권번 출신의 이였고, 또 다른 선생은 김연화로 화성권번 팔 기생 출신의 김연화로, 소리속이 옹골찬 이였지만 그만 중병으로 세상을 마감하였다.
그 후 당시 한창 이름을 드날리고 있는 김옥심을 찾아가 배우기를 청하기도 했으나, 김옥심은 "몸도 아프거니와 내가 지금은 바빠서 가르쳐 주지 못하고 내 동무를 소개해 줄 터이니 그 사람한테 배워라"하는 말을 듣고 김정희를 만나서 소리를 배웠다.
김정희는 평양 태생으로 개성에서 살다가 서울로 와 활동을 한 이며 목구성이 좋기로 그 세계에서는 알려진 숨은 명창이었다고 한다.
마침 소개를 받은 이희완은 여기에서 십이잡가와 경기민요, 서도소리를 배울 수 있었다.
이처럼 이희완의 학습은 여러 선생을 통해 이루어졌고, 이들 스승한테 배운 것은 다름 아닌 옛 가사라고 볼 수가 있다.
지금은 노랫가락이나 창부타령의 옛 가사가 거의 없으며 있다해도 가사만 알았지 부를 줄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희완은 비록 조명이 난 스승들은 아니지만 인생역전 만큼이나 고달픈 삶을 살았던 스승들에게서 소리를 배웠기에 다 닳은 숫돌처럼 옹골찬 소리를 낼 수 있는 것이다.
글·이자균(한국민속연구소 상임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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