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설서에서 :
신 여사 정가음반을 축하하며
가령 백년이 사람의 수명으로 여긴다 쳐도 걱정 근심을 제하고 보면 반 평생에 불과하다고 한다. 그리 길지도 않은 생애를 樂을 전공으로 삶고 그 속에서 살아간다면 정말 행복한 삶을 영위했다고 여길 것이다. 갑순의 나이에 정가음반을 제작한 신운희 여사가 그런 삶의 주인공으로 다복까지 갖추었으니 아니 부러울 수가 없다.
지 지난해 은사 김월하 여사의 유작 CD음반 네 장을 우여곡절과 수모를 감수하면서 세상에 내 놓고 이제야 첫 번의 본인 음반 제작이니 감계가 무량할 터이다. 불혹을 넘겨 석사과정을 끝내고 모교에서 강의를 맡고 한국여류가악회를 이끌어가는 그의 정열은 고독한 선비의 길이 분명할 것이다.
제마다 살아가는 길이 늘 평탄치 않듯이 국악계의 길 또한 만만치 않아 고난없이 성취되는 일이 없다. 불과한 세월에서 얻어진 기보를 뽐내고 숙성되지 않은 목청을 돋구며 겸손치 않은 언동이 보이며, 실기자 중에도 예의바르고 존경받던 옛 모습으로 돌아가는 정악계를 진심으로 바란다.
반주를 맡으신 조창훈·최충웅·정재국·구윤국 선배들과 양경숙·김광섭 제현에 깊이 감사드린다. 음반 제작과 더불어 그녀의 가곡 발표회가 성공리에 끝내기를 기원한다.
김 호 성
(중요무형문화재 가사 준인간문화재)
소리...... 또 하나의 설레임
한옥에는 화려하고 번다한 장식은 없습니다. 대신 창살만은 다채롭습니다. 소슬빗살무늬, 완자무늬, 꽃살무늬에 이르기까지 수십 종류에 이르는 창살들은 집의 표정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창이라는 조그만 공간에 이만큼 다양한 무늬의 살대를 적용하는 점, 그것은 우리 정가의 아름다움과도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시조와 가곡. 다만 느리게 느껴지는 가락 속에는 쉴 새 없이 잔물결들이 흐르고 있습니다. 길게 이어지는 호흡에 자연과 사람에 대한 애정을 담고 있지요. 그 물결들은 한옥의 창살들처럼 갖가지의 표정을 만들어 내고 있습니다.
言約이 늦어가니 庭梅花도 다 지거다.
아침에 우든까치 有信타 하랴마는
그러나 鏡中蛾眉를 다스려 볼까 하노라.
계면조 이수대엽 <언약이>의 노랫말은 이러합니다. 연인의 약속은 자꾸만 늦어지고 뜰 안의 매화도 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거울 앞에 선 여인은 눈썹을 다듬고 몸단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아름다운 노랫말이 계면조에 얹혀 마음을 촉촉하게 적십니다.
노래 한 자락 한 자락마다 담긴 喜怒哀樂은 옛사람들의 삶의 방식이기도 했습니다. 옛사람들은 그 무엇에도 쫓기지 않고 풍류를 즐겼습니다. 걱정이나 근심은 부려 두고 따뜻한 가슴으로 살았지요. 가곡의, 시조의 노랫말들을 가만가만 음미하면 그런 삶의 방식을 진정으로 이해할 수 있을 겁니다.
사실, 시조와의 만남은 우연한 마주침이었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저의 운명이 되었습니다. 길게 이어지는 여음을 내면서 또 다른 나의 모습과 만날 수 있었지요. 우조에서 계면으로, 느린 노래에서 빠른 노래까지 가곡과 시조를 통해 감정을 다스리고 나를 내려놓는 법을 터득했습니다. 열두 폭 치마처럼 모든 것을 덮을 수 있는 법도 알게 되었습니다.
음반을 준비하면서 새록새록 우리 가곡에 대한, 시조에 대한 사랑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한 곡 한 곡 창살의 무늬들처럼 다양한 표정을 담을 수 있도록 나름대로 애를 썼습니다.
어찌 보면 시조와 가곡의 선율 공간은 좁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 공간 안에서 너와 나의 경계를 넘고 자연과 우주를 포용할 수도 있을 것 같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 음반은 저에게 새로운 출발점이기도 합니다.
저의 음반을 위해 기꺼이 애를 써주신 분들께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시대 국악계의 최고 명인급 반주자를 모시고 소리를 한다는 것은 또 하나의 설레임이었습니다. 여러 반주자 분들은 저의 소리를 이끌어주셨지요. 그리고 거친 자갈밭을 골라 뿌리내릴 수 있도록 도와주신 김호성 사백님, 서한범 교수님께도 머리 숙여 감사 드리고 싶습니다.
서예를 할 때, 붓이 진행하려는 반대 방향으로 붓을 대었다가 나아가는 것을 기필이라고 한다지요. 기필을 하면 획에 힘이 생기고 매끄러워진다고 들었습니다. 길을 재촉하기보다는 뒤를 돌아보고 시작하는 마음, 기필의 자세가 보다 멀리 나갈 수 있는 힘이 될 것 같습니다.
* 신 운 희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이수자
한국 여류 가악회 회장
1. 평시조 - 태산이
태산이 높다하되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오르면 못오를리 없건만은
사람이 제아니오르고 뫼만높다 하더라
2. 평시조 - 친구가 남이련만
친구가 남이련만 어이그리 유정한가
보면 반가웁고 아니보면 그리워라
아마도 유정무정은 사귈탓인가 하노라
3. 사설시조 - 팔만대장경
팔만대장경 부처님전 비나이다
나와 임을 다시보게 하옵소서
여래보살 지장보살 문수보살 보현보살
오백나한 팔만 서방정토 극락세계 관세음나무아미타불
후세에 환토상봉하여 방연을 잇게되면
보살님 은혜를 사시보시 하오리다
4. 여창지름시조 - 기러기
기러기 산이로 잡아 정드리고 길드려서
님의 집 가는 길을 역역히 가르쳐 두고
밤중만 님 생각 날 제면 소식전케 하리라.
5. 우조시조 - 나비야
나비야 청산가자 범나비 너도가자
가다가 저물어든 꽃에들어 자고가자
꽃에서 푸대접하거든 잎에서나 자고가자
6. 중허리시조 - 산촌에
산촌에 밤이드니 먼데서 개 짖어온다
시비를 열고 보니 하늘이 차고 달이로다
저 개야 공산에 잠든 달을 짖어 무삼하리오
7. 계면조 이수대엽
初章: 언약이 늦으니 二章: 정매화(庭梅花)도 다 지거다. 三章: 아침에 우든 가치 유신(有信)타 허랴마는, 四章: 그러나 五章: 경중아미(鏡中蛾眉)를 다스려 볼까 하노라. <朴凞瑞>
8. 계면조 평롱
初章: 북두칠성(北斗七星) 하나 둘 서이 너이 다섯 여섯 일곱분께 二章: 민망(憫忙)한 발괄(白活) 소지(所持) 한장 아뢰나이다. 三章: 그리던 임을 만나 정엣 말삼 채 못허여 날이 쉬 새니 글로 민망 四章: 밤중만 五章: 삼태성(三台星) 차사(差使)놓아 샛별 없이 하소서.<作家未詳>
9. 평조 우락
初章: 바람은 지동(地動)치듯 불고 二章: 궂인비는 붓드시 온다. 三章: 눈 정(情)에 거룬 님을 오늘밤 서로 만나자 허고 판 첩 처서 맹서(盟誓)받았더니 이 풍우중(風雨中)에 제 어이 오리 四章: 진실(眞實)로 五章: 오기곧 오량이면 연분(緣分)인가 하노라. <作家未詳>
10. 반우반계 환계락
初章: 앞내나 뒷내나 중(中)에 二章: 소 먹이는 아희 놈들아. 三章: 앞내 옛 고기와 뒷내 옛 고기를 다 몰속 잡아 네 다라끼에 넣어 주어드란 네 타고 가는 소 등에 걸쳐다가 주렴. 四章: 우리도 五章: 바삐 가는 길이오매 전할동말동 하여라.<作家未詳>
11. 계면조 편수대엽 - 남녀교창
初章: 모란(牧丹)은 화중왕(花中王)이요. 二章: 향일화(向日花)는 충신(忠臣)이로다. 三章: 연화(蓮花)는 군자(君子)요, 행화(杏花) 소인(小人)이라. 국화(菊花)는 은일사(隱逸士)요, 매화(梅花) 한사(寒士)로다. 박꽃은 노인(老人)이요, 석죽화(石竹花)는 소년(少年)이라. 규화(葵花) 무당(巫堂)이요. 해당화(海棠花)는 창녀(娼女)로다. 四章: 이 중(中)에 五章: 이화(梨花) 시객(詩客)이요, 홍도(紅桃) 벽도(碧桃) 삼색도(三色桃)는 풍류량(風流郞)인가 하노라.<金壽長>
12. 계면조 태평가 - 남녀병창
初章: 이랴도 태평성대(太平聖代) 二章: 저랴도 성대(聖代)로다. 三章: 요지일월(堯之日月)이요, 순지건곤(舜之乾坤)이로다. 四章: 우리도 五章: 태평성대니 놀고놀려 하노라.<成守琛>
Recorded at Dada Recording Studio·Seoul, Korea, 2004.11
Mixed at Dada Recording Studio·Seoul, Korea, 2005.8
Sound Director·홍동기·Hong Dong Gi
Recording Engineer·계성원·Kye Sung Won
Typography·김호성·Kim Ho Sung
Jacket Design·문고은·Moon Ko Eun
Production Coordinator·다다미디어·Dada M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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