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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명[부제포함] 선영악회 1집 <김여란의 춘향가>
음반 번호 DGACD-004 , CD 4 매
제작 / 기획사 선영악회
발매 연도 2016
구 분 사가반
분 류 판소리
업데이트 일시 2016-12-31A
비 고



 
선영악회 1집 <김여란의 춘향가>

CD 1 : 나귀안장 - 사랑가
1-01 자진머리 나귀안장 (학습광경) 5:22

1-02 진양 광한루 경치-시창 5:49

1-03 중머리 책상에 촛불을 6:17

1-04 중머리 가부야이 걷는-춘향의 집 6:08

1-05 중중머리 천자뒤풀이 8:06

1-06 중머리 해 소식 10:15

1-07 중머리 방치레 4:17

1-08 중머리 춘향 앞으로 들어가며 5:27

1-09 진양 춘향모친 전후사를 7:16

1-10 진양 긴사랑가 7:03

1-11 중중머리 자진사랑가 4:41 총 70분

CD 2 : 이별가
2-01 중머리 이별가 14:31

2-02 단중머리 건장한 두 패 조군 3:06

2-03 진양 분 같은 얼굴은 4:46

2-04 중중머리 월매창 7:42

2-05 중머리 이별가 8:05

2-06 진양 술상차려 9:48

2-07 중머리 도련님 하릴없어 말 우에 6:41

2-08 진양 비 맞은 14:11 총 68분


CD 3 : 신연맞이 - 지자군
3-01 자진머리 신연맞이 7:32

3-02 진양 기생점고 4:38

3-03 중중머리 군로사령 8:42

3-04 중중머리 남원골 기생 3:36

3-05 진양 옥중가 (천지삼겨) 11:28

3-06 중머리 옥중가 (황릉묘) 13:03

3-07 중머리 기생 난향 5:47

3-08 자진머리 과거장 8:34

3-09 진양 지자군 9:08 총 72분



CD 4 : 농부가 - 이화춘풍
4-01 중머리 백운홍수 3:35

4-02 중머리 농부가 8:46

4-03 진양 박석티 5:53

4-04 중중머리 어사와 장모 12:06

4-05 진양 초경이경 5:35

4-06 중머리 춘향유언 8:13

4-07 자진머리 광한루 잔치 7:35

4-08 자진머리 어사출도 7:55

4-09 중머리 이화춘풍 7:57

4-10 중중머리 월매 춤추는데 4:42 총 72분

* 소리.북:김여란. 원본녹음:이규호 (1979-1981년, 카세트테이프) MONO
* 기획 : 선영악회(배연형 이규호 김도연 김태희 신정혜 문해돋이 조상민 김미나 박태오 노은주 임상래 윤호세 이효덕 정진 구자우 황은진 김인숙 임형택 사은영 윤광봉)

* 제작 :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 DGACD-004/1,2,3,4 / 해설:이규호. 배연형. 녹음편집:배연형. 리마스터링:석지훈. 인쇄:무송기획인쇄. 음반제작:서울미디어·탑예술기획.

* 비매품(500부 한정판) NOT FOR SALE
 
* 대단한 음반이 나왔다. 불가능했던 음반이 선영악회의 노력으로 나오게 되었다. 그 노력은 아래 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온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김여란 명창의 춘향가를 들을 수 있다는 사실이 가슴을 뛰게 한다. 해설서는 아주 자세하다.(2017.1.1)
 
* 해설서에서 :

발간사
김여란의 춘향가를 내면서

『김여란의 춘향가』는 이규호 회원께서 1979년부터-1981년까지 김여란 명창에게 춘향가를 학습할 때 녹음해 둔 카세트테이프를 복각한 것입니다. 선영악회 회원들이 힘을 모아 김여란 명창의 춘향가 전모를 세상에 선보이게 된 것을 기쁘게 생각합니다.

김여란(1907~1983) 명창은 정노식의 『조선창극사』(1940)의 맨 마지막 순서에도 등장할 만큼 판소리사에 큰 이름을 남긴 역사적 인물이지만, 안타깝게도 공식적으로 춘향가 전판 녹음을 남기지 못한 채 작고했습니다. 20세기 초반에 활동했던 5명창에게 직접 배운 판소리 중에 온전하게 전승되고 있는 바디가 김여란의 정정렬 제 춘향가밖에 없다는 사실만 보더라도 이 녹음의 중요성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김여란 명창은 녹음이 희귀하여 그의 정정렬 제 춘향가는 토막소리 몇 마디로 아쉬움을 달래야 했습니다. 이 음반을 통해 정정렬 제 춘향가의 역사와 예술성을 돌이켜보고, 다시 한 번 판소리의 본질을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합니다. 귀중한 자료를 간직해 오신 이규호 선생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선영악회는 판소리를 전공하는 실기자와 연구자들이 함께 모인 판소리 공동체입니다. 선영악회에서는 판소리 희귀 녹음자료를 보존하고 널리 알리기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입니다.

2016. 12. 25.

선영악회 회원 일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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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여란의 춘향가 전수(傳授) 테이프 복원 / 배연형 (판소리학회장)


김여란 춘향가 학습 테이프의 성격

이 음반은 김여란(1907. 4. 4.~1983. 5. 3.) 명창이 생전에 제자 이규호에게 춘향가를 전수하면서 남긴 카세트테이프를 복원한 것이다. 이규호는 김여란 명창이 작고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가르친 제자이다. 춘향가 전바탕의 학습과정은 모두 카세트테이프 19개에 담겨 있으며, 60분용과 90분용 등이 섞여 있다. 테이프에 기록된 녹음일자는 1979년 11월 6일에서 시작되고 있으며, 마지막 녹음일자는 1981년 2월 26일이다. 녹음은 1979~1981년 사이 약 16개월간 이루어졌으며, 초벌 학습을 마친 뒤 재벌 학습을 시작하고 나서 얼마 안 되어 김여란 명창이 풍이 오는 바람에 학습이 중단되었다고 한다.

이 테이프는 판소리 학습을 위해 녹음된 것이지 실제 공연이나 정식 녹음을 담은 것이 아니다. 처음 소리를 배우는 제자를 위해 또박또박 소리를 하기 때문에 현장의 생동감이나 김여란 특유의 섬세한 표현이 충분히 드러나지 않는 것은 그 때문이다. 이것이 김여란 판소리의 진면목이라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한다. 이런 사정과 아울러 이 음반을 감상하는 데 도움이 되도록 먼저 테이프의 원본 녹음과 편집 과정을 설명하고자 한다.

당시 김여란 명창은 고령인데다 건강까지 좋지 않아서 소리를 마음껏 할 수 없는 처지였다. 기운이 모자라서 상청은 거의 지르지 못하였으므로 대부분 소리는 낮은 바닥청으로 부르고 있으며, 때로는 숨이 차서 장단의 한배가 달라지기도 한다. 학습 시에는 김여란 명창이 직접 북을 치면서 가르쳤는데, 고법도 장단을 짚어주기 위한 것이지 일반 공연 때의 판소리 고법은 아니다. 이 테이프에는 상청을 지를 때나 사설이 막힐 때에 제자가 도와주는 경우가 많다. 함께 부르는 목소리는 물론 이규호의 소리이다.

김여란은 판소리를 학습하기 전에 시조와 가곡을 먼저 가르쳤다. 그래서 이규호의 학습 테이프 앞부분 3개에는 시조와 가곡 학습이 담겨 있다. 이규호의 학습 테이프는 정정렬 제 춘향가 전 바탕이 담겨 있으나 아니리가 빠져 있다. 판소리 학습시에 아니리는 특별히 가르치지 않았다고 한다. 또한 이규호 학습 테이프에는 십장가와 그 전후 대목이 누락되어 있다. 이 대목은 김여란의 제자 최승희 명창에게 학습한 내용이 담겨 있다. 김여란 명창의 건강이 좋지 않아서 줄곧 상청으로 질러야 하는 십장가 대목을 가르치기에는 기운이 부쳤던 때문으로 짐작된다.

김여란 명창의 학습 녹음은 대체로 세 가지 방식으로 진행되고 있다. 먼저 장단과 선율을 익히기 위해 사제가 한 장단씩 주고받으면서 한 대목을 부르고, 그 다음에는 함께 합창으로 부르며, 마지막으로 김여란 명창 혼자서 불러 넣어주는 식으로 녹음되어 있다. 물론 녹음을 넣기 전에 여러 차례 반복해서 소리를 익히고 난 다음 녹음은 최종 정리 과정만 담고 있는 것이다.

김여란 학습 테이프는 처음에는 한 대목을 주고받는 창-합창-독창 세 형태를 반복하는 방식으로 녹음되어 있으나, 나중에는 합창으로는 부르지 않고 주고받는 소리와 독창만 담고 있으며, 마지막 부분에는 독창마저 생략하고 주고받는 창으로만 녹음되어 있다. 시간이 지날수록 김여란 명창이 기운이 부쳐서 그렇게 된 것 같다.

어떤 대목은 길어서 하루 학습 분량이 넘어서 며칠에 걸쳐 녹음된 경우도 있다. 예를 들면 ‘천자뒤풀이’는 여섯 번에 걸쳐 불러준 것을 이어붙인 것이다. 본 음반은 대부분 마지막에 김여란 명창이 혼자서 부른 부분을 발췌하여 연결한 것이다. 다만 첫 곡 나귀안장 대목만은 녹음이 이루어진 상황을 이해할 수 있도록 주고받는 창-합창-독창 세 형태의 학습과정을 모두 수록해 두었다.


김여란 학습테이프의 복원 작업

이 음반은 학습 시간에 한 단락을 배우고 나서 마지막에 김여란 명창이 독창으로 불러준 녹음을 이어붙인 것이다. 김여란 명창이 학습을 시작하기 전에 독창부터 녹음을 했더라면 훨씬 기운이 있었을 테지만, 당시에는 이 녹음이 후세에 자료로 남아 복원될 수 있을 줄은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긴 대목은 여러 도막으로 나누어 가르쳤으므로 한 도막이 불과 1-2분, 2-3분 정도밖에 되지 않지만, 김여란 명창이 마지막에 독창을 녹음할 때쯤이면 지쳐서 짧은 소리도 힘겨워 하고, 상청도 거의 나오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편집과정에서 가능한 길게 녹음된 도막을 찾아서 연결해 놓아도 상청이 나오지 않는 부분이 많이 있다. 이럴 때는 앞쪽 주고받는 창에서 상청이 나오는 부분만 오려서 바꾸어 붙이기도 하였다. 때로는 높은 청을 낼 수 없어서 아예 한 옥타브 낮추어 부르는 대목도 많이 있는데, 이럴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그냥 둘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는 제자가 높은 청으로 받아서 불렀다는 것을 상상하면서 들으시기 바란다.

테이프 복원은 대체로 김여란 명창이 독창으로 부른 대목을 발췌했지만, 독창으로 녹음을 넣지 않은 대목도 많이 있다. 이럴 때는 처음 한 장단씩 주고받는 녹음 중에서 김여란 명창의 소리 부분만 발췌하여 수십 마디를 일일이 이어붙일 수밖에 없었다. 가령 초반에 나오는 시창 ‘교명오작선인교요’, 중머리 ‘해 소식’, 진양 ‘긴사랑가’ 절반이 그런 부분이다. 특히 춘향가 끝 부분에서 ‘어사와 장모’, ‘어사출도’의 후반부, ‘이화춘풍’, ‘월매 춤추는 대목’ 등은 전체가 주고받는 소리를 재편집한 것이다.

이런 대목을 편집하는 데는 시간도 매우 많이 소요될 뿐 아니라 세심한 검토가 필요하기 때문에 테이프 복원에서 가장 어려운 작업이었다. 주고받는 녹음을 편집할 경우, 장단의 시가가 모자라거나 북이 빠지는 곳이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에는 빈 공간을 넣어 시간을 늘려주거나 북소리만을 따서 넣는 방법으로 모자라는 부분을 채울 수밖에 없었다. 늘려주는 시간은 대체로 한 박이나 반 박, 때로는 그보다 짧을 때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이 달라지거나 속도가 차이로 인해 어색해지는 현상은 불가피한 일이었다.

또한 원 녹음에서 녹음기 스위치 작동의 타이밍이 맞지 않아 시작 첫 마디나 끝마디에 잡음이 들어가거나 잘린 부분도 있는데, 그럴 때도 성한 녹음을 찾아서 편집하였다. 이렇게 편집한 소리는 한 장단이나 반 장단일 때도 있고, 때로는 한 어절이나 음절일 때도 있었다. 다행인 것은 김여란 명창의 학습 녹음이 동일한 대목이 최소한 두 차례 이상 반복 녹음되었기 때문에 가능한 작업이었다. 물론 이것이 원 녹음의 모습과는 차이가 있지만, 실제로 김여란 명창이 불러도 똑같은 성음과 음정과 박자였을 것이다.

이 녹음을 판소리로 감상하기 위해서는 음이 누락되지 않아야 하고, 장단도 맞아야 하기 때문에 달리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도 아닌 문제였다. 결과적으로 보면 다른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김여란 본인이 같은 시간에 반복한 소리이기 때문에 편집된 소리는 나중에 편집자 자신도 찾아내기 어려운 결과가 되었다. 이러한 방식의 판소리 음원 복원 작업은 처음 시도되는 것인데, 디지털 편집 방식이 개발되지 않았던 시절에는 불가능한 작업이었다.

김여란 학습 테이프는 소리 대목을 이어서 편집할 때 속도나 본청이 달라지는 경우가 많다. 녹음 날짜가 다를 때에는 음색이 달라지기도 하고, 녹음기 상태와 환경도 차이가 날 때가 많다. 또한 시김새를 가르치기 위해서 일부러 소리를 늦추어 부른 곳도 있어서 갑자기 한배가 달라지는 경우도 있다. 자택에서 학습이 이루어졌으므로 중간에 드나드는 사람들의 말소리나 문을 여닫는 소리, 옆에서 가야금 연주하는 소리, 대문 밖에 자동차, 오토바이, 헬리콥터 소리도 들리고, 심지어 연탄불 뚜껑 소리도 들린다.

김여란의 녹음은 공부를 시작할 때와 끝날 때에는 기운이 차이가 난다. 하루 공부가 끝날 때쯤이면 김여란 명창이 지쳐서 목이 제대로 나오지 않을 때도 많다. 불과 한 두 해 차이지만, 춘향가 뒷부분을 배울 때쯤이면 더욱 기운이 떨어져서 세월의 무정함과 함께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이런 소리의 차이나 잡음은 편집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오히려 김여란 명창이 지내시던 모습을 상상하면서 따뜻한 마음으로 들어주시기를 바란다.

이 녹음에서 가장 아쉬운 점은 소리 학습을 위한 테이프이므로 아니리가 대부분 빠져있다는 것이다. 극히 일부는 살아있지만, 춘향가 전체를 생각하면 여간 아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아니리가 남아있을 때에는 한 문장, 한 단어까지도 최대한 되살렸다. 그리고 음반의 녹음상태가 시기에 따라서 차이가 난다. CD1~2는 비교적 음질이 양호하나 갈수록 나빠져서 CD3~4는 음질이 상당히 떨어지고, 특히 옥중상봉 이후부터 끝까지는 음질이 좋지 못하다. 시간이 지날수록 사용하던 녹음기가 낡아서 그런지 모르지만 마지막 부분은 음이 선명하지 못한 것이 아쉽지만 소리를 해독하는 데 불편할 정도는 아니다.

이 테이프에는 소리를 반복하면서 선율이나 목 쓰는 것을 자상히 지적해주는 김여란 명창의 인간적인 모습이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제간의 정을 넘어 조손간에 나누는 사랑과도 같아 듣는 이에게 잔잔한 감동을 주기도 한다. 천수를 누리고 쓰러진 거목이라면 우리는 나무 둥치와 나이테를 보고서 그 나무의 가지나 키, 잎과 열매, 꽃의 향기까지도 능히 상상해낼 수 있다. 김여란 명창의 유음이 바로 그런 것이라고 믿는다. 이 음반은 정정렬 제 춘향가 전승의 원점이자 현대 판소리의 출발점이란 점에서 역사적인 의미가 크고 학술적인 가치가 높다. 무엇보다도 여류명창으로서 도달했던 성음의 세계는 깊은 울림을 주리라고 믿는다.

복원을 위한 재녹음과 음원 편집은 한국음반아카이브연구소 배연형이 진행하였고, 음원 편집 과정에서 음악적인 문제는 배연형과 이규호가 함께 여러 차례 되풀이 들으면서 미세한 오차를 하나하나 수정했다. 여러 음원의 조각을 이어붙이는 과정에서 장단의 한배를 감안하여 정확하게 박을 맞추는 일은 윤호세(고수) 회원이 많은 조언을 주었다. 사설의 채록과 음원의 최종적인 검토는 선영악회 여러 회원들이 함께 참여하였고, 테이프와 녹음기의 전기적 잡음 제거를 위한 리마스터링 작업은 석지훈 선임연구원이 담당하였다. 이 음반은 선영악회 회원들이 힘을 합치고 기금을 모아 만들어질 수 있었다.


김여란의 춘향가

김여란 명창은 1964년 판소리가 중요무형문화재로 처음 지정될 당시에 첫 지정자 6인 중의 한 분이다. 첫 지정자는 박녹주, 김여란, 김연수, 김소희, 박초월, 정광수인데, 당시 판소리는 완창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았으므로 지정 종목도 ‘중요무형문화재 제5호 춘향가’였다. 그러니까 춘향가 한 바탕을 여섯 사람이 부분적으로 전승하는 방식이었다. 약 10년 뒤 1970년대에 이르러 판소리 중요무형문화재 보유자를 추가로 지정하면서 제도를 개편하였는데, 박봉술, 정권진, 한승호, 박동진과 고법에 김명환을 추가로 지정하였고, 그때부터 판소리 5바탕을 바디별로 나누어 지정하였다. 이때 김여란이 지정받은 것이 바로 ‘정정렬 제 춘향가’였다.

김여란은 정정렬 제 춘향가 전판을 가장 완전하게 전승한 것으로 이름이 높다. 1970년대까지 지정받은 명창들이 바로 현대 판소리를 재건한 주역들이고, 현대 판소리는 모두 이들이 남긴 유산이라고 할 수 있다.

현재 이들의 판소리는 모두 녹음이 잘 남아 있고, 또 널리 알려져서 누구나 쉽게 들을 수 있다. 그런데 꼭 한 분, 김여란 명창의 소리만은 전판이 온전히 남아있지 못하다. 지금 남아있는 김여란의 소리는 유성기음반 몇 대목, 짤막한 공연실황, 비닐레코드(LP)에 남아있는 단가와 도막소리 몇 대목뿐이다. 그동안 김여란의 춘향가 전판을 듣는 것이 불가능하였으므로 정정렬 제 춘향가는 박초선, 최승희 등 몇몇 제자의 소리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접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옛 어른들이나 판소리 애호가들의 증언은 한결같이 김여란의 소리야말로 진정한 판소리였다고 한다. 그런 김여란의 판소리를 비록 불완전하나마 이제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판소리 애호가의 입장에서는 감격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아쉬운 점은 많지만 김여란의 춘향가 소리를 전부 들을 수 있게 된 것은 정정렬 제 춘향가 전승을 위해서도 다행스런 일이 아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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