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서에서 :
이보형 채록 <김석출과 동해안의 굿음악> 음반을 기획하며
올해는 동해안 무속음악의 거장 김석출 옹이 타계한 해다. 옹은 1922년 경상북도 영일군 출생으로, 조부 金千得 代부터 동해안 일대에서 巫業을 시작한 세습무 집안에서 金成守, 李先玉의 차남으로 태어나 당대에 一家를 이룬 화랭이다.
김석출은 경상북도 출신인 만큼 경북지역의 굿에도 능했지만, 40대부터 부산에 거주하며 경남 동해안 일대에서 활동하였기 때문에 경남지역의 굿도 어느 정도 가능한 양중이다. 특히나 부산과 울산지역의 굿은 1980년대 이후 전승이 끊어졌기 때문에, 이 지역의 굿을 불충분하지만 재현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화랭이라는 점에서 김석출의 중요도는 높다. 또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남해안 굿의 예전 모습이나 경북 내륙의 굿음악과 무속인들에 대해서도 거의 유일한 목격자라 할 수 있다.
김석출의 음악은 타고난 음악성을 바탕으로 하지만, 그가 만들어내는 음악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경북 동해안 지역의 전통적인 무악 가락과 문서에 바탕을 두면서도 다른 지역 굿의 좋은 가락들을 자기화하고, 심지어는 판소리나 기악음악도 섭렵함으로서 음악적인 외연을 확장해 왔다. 이런 재능과 음악적 욕구는 결국 타악기만으로 편성되는 동해안의 무악 반주악기에 호적을 함께 편성하기에 이르렀고, 종내는 호적산조 한바탕도 탄생시키게 된다.
이 음반의 구성은 대담이 주를 이루고, 巫樂은 서낭굿 한 거리만 편성하였다. 이유는 굿의 성격상 수십 시간에 걸친 음악을 한 장의 음반에 담기는 태부족이고, 또 김석출 옹의 실황연주는 부족하지만 기존에 발행된 몇몇 음반들과 또 영상자료를 통해서 볼 수 있다. 하지만 대담자료는 흔치가 않고, 특히 김석출 옹이 증언하는 경상남북도의 해안지역과 내륙 지역 간, 또 경상도 동해안이지만 경남과 경북무악의 차이 등에 대한 설명은 김석출이 아니면 듣기 힘든 증언들이기 때문이다.
이 음반에 수록된 대담자료는 1990년도에 이보형 선생님에 의해 조사된 것들이다. 이 소중한 자료가 세상에 빛을 볼 수 있게 돼 무속음악을 공부하는 필자로선 기쁘기 그지없다. 또한 이 자료들이 동해안의 무속음악에 관심이 있는 후학들에게도 귀한 자료가 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기꺼이 자료를 제공해 주신 이보형 선생님께 감사드리며, 바쁘신 와중에도 우선순위 1위로 편집과 마스터 작업을 해 주신 양정환 선생님, 급한 마음 눌러가며 출반의 전 과정을 챙기신 정창관 선생님, 이 밖에 관심과 후원을 아끼지 않은 한국고음반연구회의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
2004년 11월 13일
장 휘 주
음 반 해 설
장 휘 주(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
1. 김석출 대담: 김석출의 家系와 학습내력
대 담: 김석출 조사자: 이보형
녹음일시: 1990년 4월 22일
녹음장소: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이보형 자택.
1990년 조사 대담한 내용으로, 조부인 金千得부터 伯父인 金範守와 부친인 金成守, 작은 아버지 金永守의 출생 년대 및 활동지역, 특기, 협업관계에 있었던 경북 내륙지역의 巫覡 등에 대해 증언하고 있다.
조부인 金千得(丁未生)은 경북 영일군 흥해면 옥성동 출생이며, 형제는 없고 외동이었으며, 김범수, 김성수, 김영수 삼형제를 두었다고 한다. 김천득은 악사로 활동했고, 거리굿(회송)이나 곤반 등 남자 화랭이들이 참여하는 굿을 하였다고 한다.
伯父인 金範守(丙子生, 1876년)는 경북 영덕군 일대에서 주로 활동하였는데, 무악뿐만 아니라 농악과 판소리에도 능했다고 한다. 그리고 백부는 상주 출신의 염상태와 친구지간이어서 함께 어울려 활동도 했었는데, 염상태 외에도 상주 출신 무당 김금화 등과도 같이 굿을 했었다고 한다. 김석출의 아버지 김성수(丙戌生, 1886년)는 경북 영일군을 단골판으로 해서 활동했다고 한다.
이 밖에도 대금과 같은 기악에서의 연주기교인 '각구목질'에 대한 해설과 巫覡에 대한 명칭, 남녀 무격의 역할 등에 대한 대담내용이 수록되어 있다.
2. 김석출 대담: 경상남북도의 右道굿과 左道굿
대 담: 김석출 조사자: 이보형
녹음일시: 1983년
1983년에 이루어진 이 조사대담은 경상도 지방의 무속권이 어떻게 구획되어 있는지를 알려주는 중요한 음원이다.
경상도의 무속권은 선산, 상주, 김천, 경산, 영천 등지의 경상북도 右道권과 포항에서 영해에 이르는 경상북도 左道권, 통영, 진주, 남해, 창녕 등지의 경상남도 右道권과 부산, 울산, 양산, 밀양, 물금 등지의 경상남도 左道권으로 구분된다고 한다.
경북 右道권 무악의 특징은 호호대문으로 무가를 부르고, 장고는 우도짝채를 치며, 무가를 구사
하는 목은 우도목이라고 해서 좌도목과는 구분되는 성음이었다고 한다. 무가를 '호호대문'으로 부른다는 것은 노랫말에 "호호~"가 들어가서 붙인 별칭인 듯하고, 이러한 무가를 구사하는 성음이 판소리 목과도 다르고 좌도목과도 구별되기 때문에 이를 '우도목'이라 부르는 것 같다. 경북 우도권에서는 김금화, 염상태, 엄공백과 같은 지모, 산이들이 활동했는데, 이 중 엄공백은 농악도 잘 쳤지만 특히 여러 악기 중에서도 제금가락이 특히 좋았다고 한다. 그리고 상주와 선산 등지에서는 굿을 할 때 피리나 호적과 같은 선율 악기들을 썼는데, 피리는 고삼, 자삼 무가를 부를 때, 호적은 서낭을 모셔올 때 등에 사용했다고 한다.
경남 좌도권 무악은 어청보와 진청보(긴청보)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인데, 이 중에서 긴청보는 칸살이 안대(경북 좌도)보다 많은 것이라 한다.
경남 우도권의 무악은 巫歌반주에 피리, 대금 등 잽이들이 편성되었고, 무녀는 무가를 부를 때나 굿을 진행할 때 큰 부채를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라 한다.
3. 김석출 대담: 부산, 울산지방의 무악반주
대 담: 김석출 조사자: 이보형
녹음일시: 1990년 4월 22일
녹음장소: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이보형 자택.
부산, 울산지방에서는 무가 반주를 삼현육각으로 하였다고 한다. 악기편성은 북, 장고, 쌍피리(대피리), 하피리(세피리), 저(젓대, 대금)로 대개 구성되었으며, 삼현육각을 잡힐 때는 고삼, 자삼무가를 부를 때나 별신에서 성주 올릴 때, 어청보로 무가를 부를 때 등등에서였다고 한다.
울산에서는 부산에서 활동하던 김영달의 부친인 김택룡이 피리도 불고 대금도 불었는데, 특히 대금을 잘 불었다고 한다. 또한 울산에서는 김경숙, 김월산이 피리를 불었는데, 특히 김경숙은 쌍피리를 잘 불었다고 하며, 대금잽이로는 김택룡에게서 배운 김영문이 활동했다고 한다.
이 밖에 울산의 신청(崇神조합이라고도 불렀다 함)에 대한 내용이 짧게 언급돼 있다.
4. 실 황 연 주: 동해안 별신굿 中 천왕굿
무가: 김유선 장고: 김석출
녹음일시: 1977년 11월 12일
이 음반은 1977년 11월 12일 서울의 신성여관에서 한 녹음이다. 무가와 장고에는 김유선과 김석출로 추정되지만 확실치는 않다.
동해안 별신굿의 천왕굿은 서낭굿의 경상도 방언이다. 천왕굿을 하는 원래 형태는 타악합주로 푸너리를 연주하고, 청보무가를 길게 부른 다음, 거무장단에 거무춤을 추고, 무녀가 무가로 수부를 치고 마친다. 이 절차는 부산, 울산의 천왕굿이든 영덕, 포항의 천왕굿이든 같다. 다만 경북은 청보무가를 달어청보로 부르는데 비해 경남은 남대청보(또는 긴청보)로 부르는 것이 다르다. 음원의 청보무가는 경북 동해안 지방의 달어청보 무가이다.
음원은 천왕굿의 절차 중에서 전체 다섯 章으로 이루어져 있는 청보무가와 이어지는 거무춤의 거무장단 1, 2장까지 만을 수록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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