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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명[부제포함] 한국전통음악시리즈 제4집 판소리명창 박록주 <흥보가>
음반 번호 JCDS-0435/6 , CD 2 매
제작 / 기획사 지구레코드
발매 연도 1994
구 분 일반반
분 류 판소리
업데이트 일시 1994-04-XX
비 고



 
한국전통음악시리즈 제4집 판소리명창 박록주 <흥보가>

- 박록주 명창 서거 15주기 추모음반 -

* CD 1
1.처음부터 놀보 심술타령까지 2:42
2.흥보 쫓겨나는데 5:38
3.흥보마누라 탄식 2:40
4.흥보가 환자섬을 얻으러 호방을 찾아갔다가 닷 냥을 받아 귀가 6:35
5.흥보 매품 팔러 갔다가 귀가 9:09
6.흥보가 놀보에게 곡식을 얻으러 갔다가 귀가 13:39
7.도승이 흥보에게 집터를 잡아주는데 6:20
8.흥보가 부러진 제비 다리를 고쳐주는데 5:29
총:52:12

* CD 2
1.제비노정기 6:23
2.가난타령부터 돈타령까지 8:53
3.비단타령 8:19
4.흥보집 짓는데 4:54
5.놀보가 흥보집을 찾아가는데 6:22
6.화초장타령 3:33
7.제비 후리러 나가는데 2:21
8.놀보의 첫번째 박에서 남사당패가 나오는데 8:11
9.놀보의 두번째 박에서 샌님이 나오는데 2:08
10.놀보의 세번째 박에서 장수가 나오는데 부터 끝까지 3:24
총:54:28



* 소리:박록주 * 고수:정권진 * 도와주신분:이보형
* 음반해설:노재명 * 협찬:한국고음반연구회
* 디자인:지구레코드 디자인실 * 디지털 마스터링:김도연
* 제작:지구레코드
 
2003.04.30. 문예진흥기금 지원금

 
* 다시 듣게 된 지구레코드의 박록주 흥보가 음반

요즘 가장 활발히 전승되고 공연되는 흥보가는 박록주제,김연수제,박봉술제,강도근제,박동진제이다. 이 가운데 박동진을 제외하고는 모두 송만갑의 흥보가를 직,간접적으로 이어답은 소리제다.그러니 여러 유파의 흥보가 중에서 송만갑의 동편제 흥보가가 예술적으로나,대중적으로나 가장 성공하였다고 볼 수 있고 오늘날 까지 살아남은 소리가 되었다.상대적으로 다른 유파의 동편제 흥보가는 접하기가 어렵다. 흥보가는 송만갑이 즐겨 불렀던 장기로서 그의 흥보가는 박봉래를 거쳐 박봉술에게 김정문을 거쳐 박록주와 강도근에게 이어졌다.

송만갑제 소리중에서 흥보가는 박록주에 의해서 가장 잘 전승되어 오늘날 많은 후학들이 박록주제 흥보가를 부르고 있으며 음반도 많이 남아있다. 박록주도 물론 흥보가 음반을 남겼다. 그리고 박록주에게 흥보가를 배운 김소희,박귀희,성창순,한농선,박송희등도 박록주제 흥보가 음반을 냈다. 음반으로 제작된 박록주의 흥보가 완창 녹음은 2종이 있는데,1967년에 녹음된 지구 레코드 소장 녹음과 1973년에 녹음된 문화재보호협회소장 녹음(고수:김동준)이 바로 그것이다. 음반화 되지 않은 박록주의 흥보가 완창 녹음으로는 기독교방송국 소장 녹음(고수:정철호,녹음시기 미상)과 1976년에 문예진흥원의 판소리 조사 사업으로 녹음된 것(고수 미상)이 있다. 이 중에서 문화재 보호협회 소장 녹음은 여러번 음반으로 제작되었고 라디오 방송을 통해서도 많이 소개되어 박록 주의 녹음 가운데 가장 잘 알려져 있다.

문화재보호협회에 보관되어 있는 박록주 흥보가 녹음은 박록주가 공간사랑 근처에 살 때 유기룡의 주선으로 녹음된 것인데 춘향가,숙영낭자전,남도민요도함께 녹음하여 보관되어 있다. 문화재 보호협회 소장녹음은 1970년대 중반에 비매품으로 제작된 ‘박록주 흥보가’음반,1976년에 문화재 보호협회가 기획하고 지구레코드에서 제작한 [한국전통음악 대전집 41,42]과 1988년에 중앙일보사가 기획하고 서울음반이 제작한 [국악의 향연 30,31],1989년 4월 25일에 아세아 레코드에서 제작한 명창 박록주 흥보전 1~3집에 담겨있다.지구코드 소장 녹음은 1967년에 장시간 음반으로 제작되었으나, 초판이 소량제작 되었다가 절판되어 한국 전통음악 음반 가운데 가장 희귀한 음반 가운데 하나로 꼽혀 한국전통음악 음반 수집가들에게 수집의 표적이 되어왔다.그러다가 이번에 재발매 되었다.지구레코드 소장 녹음에는 박록주가 잘 부르지 않았던 <놀보 박타령>대목도 담겨 있어 주목된다.지구레코드의 박록주 흥보가 음반은 문화재보호협회에서 소장하고 있는 박록주 흥보가 녹음 보다 약10분 가량이 더 긴 106분 40초 짜리 녹음을 담고 있는 음반으로서 인간 문화재 시대를 대표하는 명반으로 평가된다.

지구레코드의 박록주 흥보가 음반을 들어보면 한가지 특이 하게 생각되는 것이 있다. 문화재보호협회에 보관되어 있는 박록주 흥보가 녹음에는 박록주 말년의 전용 고수였던 김동준이 북을 잡고 있는데, 지구레코드의 박록주 흥보가 음반에서는 북반주를 판소리명창인 정권진이 맡았다는 점이다.그리고 정권진은 흥보가를 별로 부르는 일이 없었는데,박록주의 흥보가를 반주한 점도 특이하다고 하겠다. 지구레코드에서 박록주의 흥보가를 녹음할 당시는 김동준이 박록주의 전용 고수로 활동하기 이전이고 김명환은 김동준보다 뒤늦게 서울에서 활동했으며 음반 취입이라면 고수는 으레 이정업으로 통했던 시기였다.

그런데 이런 상식을 깨고 지구레코드에서 대명창인 박록주의 흥보가 음반을 3장짜리 장시간음반으로 과감하게 기획하면서도 전문고수를 쓰지 않은 이유는 다음과 같은 주변상황이 작용했기 때문인 것으로 짐작된다. 1960년대 초반,보성에서 경찰로 근무하던 정권진이 소리꾼으로 활동하기 위해 서울로 갔다. 무작정 낯설은 서울로 간 정권진은 기댈곳이 없었다. 박록주를 찾아갔다.그 이전에 박록주를 우연히 만나 애기를 나눈 기억이 있었기 때문이다. 정권진이 경찰로 근무하고 있을때, 박록주가 공연 때문에 보성에 갔다가 우연히 어떤 음식점에서 경찰복을 입은 정권진이 경찰들 앞에서 소리하는 것을 들었다. 박록주는 그 소리가 대명창인 정응민의 소리제(보성소리)임을 알아들었고 정권진의 소리를 귀하게 여겨서, 경찰보다는 서울에서 판소리 명창으로 활동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했다. 그러다가 정권진이 마침내 경찰일을 그만두고 서울로 간 것이었다. 낯선 서울에서 정권진은 마땅히 거처할 곳이 없어서 처음에는 비원 앞에 있던 정악원에서 생활하였다. 지금이야 보성소리가 가장 유명한 유파로 자리 잡았지만 당시 서울에서는 보성소리를 아는 이가 거의 없었기 때문에 낯설은 정권진의 보성소리는 팔리지 않아서 생활고에 시달려야 했다.

그런데 정권진의 소리 기량을 높게 인정한 사람이 다름아닌 박록주였다. 그래서 정권진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박록주가 박헌봉에게 부탁하여 정권진을 국악예술학교에서 강사로 일할 수 있게 해주었다. 박록주의 집을 자주 드나들었던 이보형은 현재 종로구 운현동에 들어서 있는 중앙일보 문화센터 자리에 박록주의 집이 있었는데, 정권진이 종로구 운현동에 있던 박록주의 집을 자주 드나들었다고 하며 아마도 박록주가 종로구 운현도에 살 때 정권진과 함께 지구레코드에서 흥보가를 녹음한 것으로 추정하였다. 정권진이 지금은 명창으로 잘 알려져 있지만 지구레코드 녹음 당시 박록주와 정권진의 교류상황을 감안하면 박록주의 음박에서 정권진이 고수로 참여한 것은 별로 이상할 것이 없다.

지구레코드의 박록주 흥보가 음반에서 고수를 맡은 정권진은 본래 고수가 아닌 판소리 명창이므로 북반주가 어설픈 면이 있다. 박록주는 북반주의 박자가 삐끗해도 짜증스러운 내색없이 뛰어난 기량으로 고수의 허물을 자연스럽게 덮어준다. 오히려 어설픈 정권진의 북가락을 박록주가 재미있게 여기며 소리하는 듯 한 인상을 주기도 한다. 대가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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