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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명[부제포함] 한국고음반연구회 명인명창선집(15) <창부타령 걸작선>
음반 번호 JCDS-0782 , CD 1 매
제작 / 기획사 지구레코드/한국고음반연구회
발매 연도 2002
구 분 일반반
분 류 민요
업데이트 일시 2003-05-10
비 고
* SP복각.



 
한국고음반연구회 명인명창선집(15) <창부타령 걸작선>

1. 박춘제 졔석타령 3:03 - 닛 노홍 K203-B(6261) 경기무가 朴春載
2. 심매향 창부타령 3:24 - 닙보노홍 K540-B 雜曲 唱夫打令창부타령 沈梅香 李楚仙 長鼓韓成俊
3. 김추월 창부타령 3;46 - Taihei GC-3036(KT-42) 俗謠 창부타령 金秋月 洋樂伴奏 伴奏太平管絃樂團
4. 신해중월 창부타령 3:02 - Polydor 19043-B(5216BF) 京畿雜歌 唱夫打鈴 申海中月 大 金桂善 長鼓金玉葉
5. 김옥엽 창부타령 3:05 - Taihei 8092-B 雜歌 창부타령 金玉葉 피리高載德 단소崔壽成
6. 이진봉.김옥엽 창부타령 3:07 - Columbia 55002(2 20821) 雜歌 창부타령 李眞鳳 金玉葉
7. 김옥엽.이영산홍 창부타령 3:22 - Chieron 7-B 京畿雜歌 창부타령 金玉葉 李映山紅
8. 이진홍 창부타령 3:24 - Taihei C8084-A 속가만요 大監노리(上) 李眞紅 피리高載德
9. 박부용 창부타령 3:15 - Okeh 1641(K918) 雜歌 新창부타령 오케-文藝部補詞編曲 朴芙蓉 伴奏오케-鮮洋交響樂團
10. 곽명월 창부타령 2:10 - Polydor 19368-B 雜歌 唱夫타령 郭明月 大 金桂善 細笛李炳祐 打樂 栗原
11. 김갑자 신창부타령 3:07 - Columbia 40521-A(29145) 伽倻琴·바이올린二重奏 新唱夫打鈴 金甲子 바이올린金甲順
12. 장일타홍 창부타령 3:33 - Regal C254 京畿雜歌 창부타령 張一朶紅 調和樂伴奏
13. 이진홍.장향란 창부타령 3:00 - Kirin C195-B 雜歌 창부타령 李眞紅·張香蘭
14. 이은주 창부타령 3:28 - King Star K6651(8-B) 海外紹介盤 창부打鈴 Changboo Taryong 編曲羅花郞 唱李銀珠 演奏킹스타-韓洋合奏團
15. 김옥심 창부타령 2:58 - Domido D1011 民謠 창부打鈴 金秉秀編曲 노래金玉心 伴奏도미도國樂團
16. 이일선.김봉업.이충선 합주 창부타령 2:43 Kirin C170-B 俗曲 창부타령 伽倻琴李日善 奚琴金奉業 大琴李忠善
총 51:09
 
한국고음반연구회가 매년 출반하고 있는 명인명창선집 15 <창부타령 걸작선>이다. 경기민요의 대표적인 곡, 이 곡만 들으면 그 사람의 경기민요 실력을 평가할 수 있는 창부타령, 한마다로 이 음반을 듣지않고 창부타령을 논하지 말라. 유성기복각이라 음질이 열악하여, 감상용으로 들을려고하는 분에게는 추천하기가 힘든 음반이지만, 민요 연구가, 전문가, 연주자는 꼭 들어야 할 필청의 음반이다. 2002년에 출반되어야 하는데, 늦게야 올해 나왔다. 아래는 해설서 내용이다. 가사는 내용이 많아 아래에는 생략하였다, (2003.5.10)
 
<창부타령 음반을 발매하며>

이보형(한국고음반연구회 회장)

지금 창부타령은 대표적인 경기민요의 하나로 꼽히고 있다. 그러나 창부타령은 [노랫가락]의 경우와 같이 본디 서울지역의 굿에서 불려지던 무가(巫歌)의 하나이다. 창부타령이라는 말 자체가 무가에서 나온 말이다. 굿에는 이른바 열두거리라 하여 제석(帝釋)거리, 군웅(軍雄)거리, 대감(大監)거리, 창부(倡夫)거리 등 여러 가지 거리가 있는데 제석거리에서 불려지는 타령은 제석타령, 군웅거리에서 불려지는 타령은 군웅타령, 대감거리에서 불려지는 타령은 대감타령이라 이르듯이 창부거리에서 불려지는 타령을 창부타령(倡夫打令)이라 일렀던 것이다.
창부(倡夫)라는 말은 광대라는 뜻이니 창부타령은 광대신(廣大神)을 모시는 거리에서 불려지는 타령이라는 뜻이다. 방아소리를 방아타령이라 이르듯이 여기에서 [타령]이라는 것은 소리(노래)라는 뜻으로 서울 굿에서 타령은 각 거리의 끝에 신이 인간에게 복을 주고 흥겹게 노는 절차에서 불려지는 소리이다. 그러니 창부타령은 창부거리에서 창부신이 인간에게 복을 주고 흥겹게 노는 절차에서 불려지는 소리이다.
이 타령 무가가 신이 즐겁게 노는 장면에서 불려지는 소리이니 구성지기로는 으뜸이라 서울에서는 일찍부터 민간에서도 널리 불려 민요가 되었다. 이 민요에서 창부타령은 굿에서와 달리 창부거리 타령만이 아니고, [어떤 대감이 내 대감]하는 대감타령도 창부타령, [어떤 중상이 나려왔나]하는 제석타령도 창부타령이라 일러 굿의 모든 거리의 타령을 아우를 뿐 아니라 세속적인 노랫말을 얹어 부르는 경우가 많다.
창부타령은 굿거리 장단에 전형적인 경토리(京調)로 되었다. 장절형식으로 되었는데 4장단 내지 8장단을 앞소리로 메기면 [얼씨구 절씨구 지화자 좋네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하고 두 장단의 뒷소리를 받는다. 선율이 화창할 뿐 아니라 구성지기 이를 데 없다.
그른 연유로 창부타령은 지금 경기민요 가운데 가장 많이 불려지고 또 가장 즐겨 듣는 민요가 되었기 때문에 일제시대부터 지금까지 수많은 경기소리 명창이 음반에 창부타령을 취입하고 있다. 그러나 창부타령은 굿에서 불려지는 것이 약간 다르고, 또 시대에 따라, 또 명창에 따라 달라서 음반에 담긴 것도 서로 비교해 보면 개성들이 있어 흥미롭다.
지금까지 발견된 창부타령 음반은 조선말기에 가무별감을 지낸 박춘재 명창을 비롯하여, 일제시대 경기소리 명창으로 유명하던 심매향, 김추월, 신해중월, 김옥엽, 이진봉, 이진홍, 박부용, 곽명월, 김갑자, 장일타홍 명창과 해방 후에 활약하였던 이은주, 김옥심 명창이 부른 것이 남아 있고 또 이일선, 김봉업, 이충선, 김봉업과 같은 기악명인들이 합주한 것도 남아 있다. 이들 창부타령으로 내노라는 명창들이 부른 16개의 유성기 음반에 담긴 것을 두루 담은 것이니 이 한국고음반연구회에서 내는 창부타령 걸작선 음반은 음반계의 기념비적인 작품이 될 것이다.


<창부타령 곡해설> 조유미(한국고음반연구회 회원)

○ 창부타령이란

창부타령은 노랫가락과 함께 대표적인 경기민요의 하나이다. 창부타령의 기원을 살펴보면
서울 지방의 무속에서 사용되는 음악 중의 하나로, 이 지역 무당들이 굿을 행할 때에 부르는 제석타령 등이 세속화되어 오늘날에는 경기민요의 하나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그 이름을 창부타령이라고 한 것은 굿 중 창부거리에서 무당이 유명한 광대(창부:倡夫)를 들먹이는 창사(唱詞)가 있어서 이로부터 창부타령이라 일컫는 것이라고 한다.
현재에는 민요로서의 창부타령과 무가로서의 창부타령이 공존하고 있다. 창부타령이 경기민요라고 하지만 우리나라의 전역에서 이를 모르는 이가 없을 정도로 서민과 친숙한 노래가 되어있다. 이는 창부타령이 가지는 가락의 단순함과 가사의 생활 밀착성 및 율동성으로 말미암은 것으로 여겨진다.
그러면 창부타령의 초기 모습은 어떠했을까. 이를 고증하는 것은 유성기음반에 담겨있는 본 음악들을 직접 살핌으로서 알 수 있다. 오늘날에 전해지는 창부타령과 비교하여 2, 30년대에 취입된 창부타령을 살펴보면 그 가락면에서 확연한 차이점을 알 수 있다.
무가로부터 분리 독립된 창부타령은 무가의 사설을 버리고 당시 유행하던 잡가, 단가 등의 사설을 차용하여 이별, 사랑 등을 그리고 있다. 원래는 굿거리 장구장단에 맞추어 불리던 창부타령은 피리, 젓대 등의 악기 반주로 연주되고 중간에 전문적인 연주부분을 삽입하는 연주형태가 생기기도 하였으며, 악기 반주로서 양악대, 즉 서양악 반주가 도입되기도 하였다. 또한 평으로 내는 초두를 질러내는 변화를 주기도하며, 중간 중간 대목에 딴청을 쓰기도하여 다양한 효과를 가져오는 창부타령이 만들어졌다.

박춘재와 같은 경기소리의 대가를 비롯하여 김옥엽, 이진봉, 이진홍, 신해중월, 표연월 등이 창부타령을 녹음한 것이 보인다. 이 음반의 마지막에 수록된 이충선, 이일선, 김봉업 등은 해방후 신세기 음반에 경기소리의 많은 기악 음반을 취입한 명인들로서 창부타령의 순수한 기악곡을 이미 일제강점기에 시도하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하겠다.
창부타령이 가지는 가사적, 음악적 특징을 살펴보자. 창부타령의 사설은 그 내용에 따라 길고 짧음이 있다. 현재는 대략적으로 사설의 길이를 틀에 맞추려는 경향이 있으나 이전에는 자유로운 길이의 사설로 즉흥적인 멋을 들어내는 멋드러진 노래이다. 규정된 것은 없지만 대개 두 장단 단위로 한 가락을 불러 나간다. 장단은 대부분 흥겨운 굿거리장단으로 되어 있다. 대표적인 입타령로 "얼씨구나 좋다 지화자 좋네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 “디리리 리리리리리 아니 노지는 못하리라”등이 있는데 이들이 모두 굿거리 두장단에 해당한다.
경기민요의 대부분이 경토리의 오음 음계로 되어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창부타령도 이와같다. .박춘재가 부른 경기무가 졔석타령에 보이는 창부타령이 현재 발견된 제일 오랜 것으로 경토리의 오음 음계를 하고 있다. 박춘재의 창부타령은 세속화된 것보다 자류로운 면이 보인다. 경토리 오음 음계의 구성음을 솔, 라, 도', 레', 미'로 나타낸다면 창부타령 각 선율 단위의 종지음은 솔이나 시작음은 도', 레', 미', 솔' 등의 여러 다양한 음인 것을 알 수 있다. 높은 음으로 시작하여 최종 종지음까지 하행 진행하는 것이 창부타령의 선율적 특징인 것이다. 시에론의 김옥엽, 이영산홍의 창부타령에는 "가지마오 가지를 마오"하는 대목에서 미'로 시작하여 라로 잠시 종지하는 곳이 나오며, 도'에서 솔음으로 4도 직접 하행하는 부분이 출현하는데 이러한 것은 오늘날의 창부타령에서는 거의 쓰이지 않으며, 아주 신선한 음악적 효과를 주고있음을 알 수 있다.

○ 연주자 해설

박춘재 명창은 경서도 소리의 대가였으며, 발탈과 재담의 명인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그의 생몰연대는 손태도의 "경기명창 박춘재論"에 의하면 1883년 경에 출생하여 한국전쟁이 일어난 바로 그해 8월 21일에 작고한 것으로 호적조사 결과 밝혀졌다. 본 한국고음반연구회에서는 박춘재 명인의 다양한 음악을 명인명창선집(9) [경기명창 박춘재]라는 제목으로 음반을 제작 발매하기도 하였다.
박춘재 명창의 음악은 1915년 신구서림에서 발매한 {무쌍신구잡가}라는 잡가집에 그 사설이 실려있을만큼 대단한 백성들의 호흥을 받았다. 그것은 그의 음악이 아주 서민적인 삶을 그리고 있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일본축음기상회에서 단면인 쪽판 음반을 취입한 것으로부터 시작하여 일본 제비표조선레코드, 콜럼비아 빅타, 시에론 등의 음반에 많은 음악을 남겼다.
심매향은 1927년대 중반에 20세의 나이로 요절한 여류 명창으로 판소리 명창으로 유명한 심정순의 딸이다. 심매향은 1907년 출생하여 아버지와 오빠에게 가야금과 판소리를 배워 가야금 병창과 판소리에 재능을 보였으며, 20년대 창부타령, 골패타령 등과 같은 경기소리와 가야금병창을 음반에 취입하기도 하였다. 1927년 일축조선소리판에서는 심매향을 추모하는 음반 발매 광고를 싣기도 하였다. 심매향과 그의 일가에 대하여 이보형의 "심정순의 생애와 예술"에 조사하여 발표한 적이 있다.
김추월은 다이헤이에 창부타령을 취입하였으나 그가 경기소리를 남긴 것과 다이헤이 음반 발매가 30년대 후반에 된 것으로 보아 이동백 등과 함께 최초로 판소리 춘향전을 취입한 여류 명창 김추월(1896-1933)과는 동명이인으로 보인다. 지금까지 경기소리를 취입한 김추월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1930년대 중반 콜럼비아 음반에 경기잡가 한강수타령을 취입한 김추월이 다이헤이에 본 창부타령을 취입한 인물로서 추정되나 이는 앞으로 두장의 음반을 비교하여 가부를 정하여야할 단계에 있다.
신해중월은 경서도 민요 특히 서도소리에 능한 여류명창으로 폴리도루, 빅타등의 음반회사에 많은 민요, 신민요 등을 취입하였다. 신해중월에 대해서는 이자균의 "유성기음반의 명인명창 열전(1)"에 비교적 자세히 조사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그녀는 1905년 무속 집안에서 출생하였고, 한성권번에서 동기로 수업을 쌓은 후 여류명창의 대열에 합류하였다. 일본이 패망하기 전까지 활동한 것으로 전해지며, 무용가 최승희의 춤반주 음악을 담당하기도 하였다고 한다.
김옥엽, 이진봉, 이진홍, 박부용은 예기로서 유성기음반에 경서도소리를 취입하였던 여류명창이다. 김옥엽과 이진봉은 함께 음반을 취입하거나 경성방송국에서 방송을 한 적이 많이 보인다. 마치 표연월과 신해중월의 콤비가 폴리도루를 중심으로 활동한 것과 같이 그네들은 콜럼비아를 중심으로 활동한 예기들이었다.
이진홍은 해방 후까지 음악활동을 했던 경서도 명창이다. 이진홍 명창은 1907년에 서울에서 출생하였다. 그는 한남권번과 한성권번에서 수학하여 김윤태, 장계춘 선생에서 사사하였다. 해방 후 대한국악원 민요부원 및 한국 민요연구회 이사로 활동한 바 있다. 이진홍과 함께 기린 음반에 창부타령을 취입한 장향란에 대해서도 잘 알려진 바는 없다.
박부용은 대표적인 신민요로 알려져있는 노들강변을 부른 가수로 오케 음반에 민요 및 신민요를 활발히 취입한 민요 명창이다. 앞서 언급한 신해중월이나 김옥엽과 같이 튼튼한 우리 음악의 기초가 엿보이지는 않으나 신민요로 30년대 아주 인기를 얻은 바 있다.
이영산홍은 일제 강점기의 대표적인 서도 명창이다. 콜럼비아와 시에론에 취입한 그녀의 음반은 많은 음반 전문가들 사이에 서도 명반으로 불려지기도 한다. 이영산홍이 개성출신임을 암시해주는 기사가 1927년 매일신보에 실리기도 하였으며, 30년대 중반까지 활발한 활동을 하였다.
곽명월은 1930년대 중반 폴리도루 음반에 곽산월과 함께 경기 소리를 취입하였다. 본 창부타령의 음반의 뒷면은 곽산월의 노래가락이 취입되어 있으며, 신고산타령, 박연폭포, 매화타령 등의 통속 민요들을 많이 불렀다.
김갑자와 김갑순은 1933년과 1934년 콜럼비아에 민요, 찬송가, 유행가 등을 취입하였으며, 음반가사지를 통해 살펴보면, 김갑자는 여성이고, 바이올린을 켜는 김갑순은 남성임을 알 수 있다. 김갑자와 김갑순의 내력에 대해서는 현재로선 잘 알 수 없지만 콜럼비아 유성기 원반(3) 가야금과 바이올린의 만남 김갑자·김갑순의 해설을 쓴 노재명에 의하면 남매지간으로 1900년대 출생한 것으로 추정한 바 있다.
장일타홍은 노재명의 "장일타홍의 유성기음반에 관한 연구"에 의하면 1910년경에 출생하여 1934, 5년에 콜럼비아 음반에 20면 정도의 민요와 신민요를 취입한 명창이라 한다. 그의 공연 소식이 1938, 9년 조선일보, 매일신보에 실린 것으로 보아 지속적으로 인기를 얻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해방후 경기 소리의 맥을 이어온 명창에 이은주, 김옥심명인이 있다. 이은주 명창은 1922년 서울에서 출생했고, 1936년부터 원경태 명창으로부터 경기민요를 배웠다. 1942년부터 서울 중앙방송국 경기민요 전속 단원으로 근무하였고, 1946년부터는 청구고전성악학원의 민요강사를 지냈다. 1955년 단성사에서 열린 국악대회에서 일등을 했으며, 1969년 제4회 TBC방송 명인명창대회에서 대상을 수상을 하는 등 대단한 기량을 대중앞에 선보였다. 1975년에는 묵계월, 안비취와 함께 중요무형문화재 제57호 경기민요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김옥심은 1925년 6월 16일 경기도 양주군 이담면에서 태어나 1987년 작고한 경기 소리의 명창이다. 조선권번과 청구고전성악연구소에서 수학하였으며, 1958년 전국민요경창대회에서 1등상을 수상하기도 하였다. 1961년에 발행된 {국악예술인명감}에 특기사항을 레코드 취입 100회라고 기록한 것으로 보아 대중들이 얼마나 그의 소리를 사랑했는가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본 음반에 수록되어 있는 창부타령의 반주를 맡고 있는 김계선, 최수성, 고재덕, 이병우 등은 당대 최고의 기악명인들이다. 김계선은 이왕직아악부의 대금연주자로서 김성진과 같은 훌륭한 후학들을 키워냈으며, 콜럼비아 음반을 주로하여 정악과 민속악, 그리고 유행음악에 걸쳐 대금 음악을 음반으로 취입하기도 하였다. 최수성은 단소의 명인으로 피리의 고재덕과 함께 정악과 민속악을 다이헤이 음반에 많이 취입하였다. 이병우 명인은 피리와 단소의 명인으로 1930년대 초에 그의 단소와 서양악기인 첼로의 병주 정악 녹음을 남길 정도로 시대의 흐음에 앞서나갔던 음악 기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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