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월하문화재단에서 보내준 해설서 자료로 일부만 1-5집에 나누어 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月荷先生 略歷
1917.12.27 경기도 고양군 한진면 보광리에서 부친 김희문선생과 모친 李씨의 2남3녀중 막내로 출생
1932 서울 재동보통학교 졸업
1936 서울 묘동교회 부설 묘동학원 야간부 고등과 졸업 / 斗峯 李昞星(이왕직아악부 출신)선생께 사사 / 부산시교육위원회 성인교육 시조 강사
1955 사단법인 한국정악원 이사
1956 원불교 동래교당 김덕기님 연원으로 원불교에 입교하여 김만주화(金萬州華)법령 받음
1958 서울중앙방송국 주최 이승만대통령 탄신기념 명창대회 시조부 장원 / 이주환선생을 비롯, 임석윤·이창배·정운산선생 등으로부터 시조, 가곡, 가사 사사 / 한국정악연구소 이사겸 사범취임
1959 <월하시조>오아시스레코드사 출반
1961 서울귀환(종로구 인사동 정착)
1965 <김월하 시조 1,2,3집> 신세기축음기사 출반
1968 국악전공 장학생육성(장학사업 시작)
1969 국악협회 시조분과위원장
1970 전국시우단체 총연합회 발족 초대회장 취임
1971 총무회 문화부부위원장 /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 시조분과 위원장 / <월하정가선>출간
1973 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여창가곡 예능보유자 지정
1974~81 국립국악원 연주원 역임
1974~85 국악예술고등학교 강사
1975~92 서울대학교·한양대학교·추계예술대학 강사
1976 홍콩·자유중국정부의 초청으로 2주간 해외공연
1976~92 법원연수원·서울교육원·한국정신문화연구원·한국표준공업협회 출강
1977 서독·프랑스·네델란드정부의 초청으로 20일간 해외공연
1978 <시조1집>유니버살레코드사 출반
1981 남녀가곡창발표회·정농악회 주최 / 중앙일보사 제1기 문화센터 시조창 강사 / 매년 조선일보사 주최 국악대공연 참가
1983 <월하시조 1,2집> 아세아레코드사 출반 / 원불교 종로교당 좌산 이광정 교감(현 종법사) 친견
1984 문예진흥원 주최 가곡발표회(문예회관 대극장) / 가곡보존회 주최 가곡발표회(세종문화회관 대극장) / 한국국악협회 국악대상, 세종문화대상 수상
1985.12.20 KBS-FM 명인전 출연
1986 <김월하 가곡집> LP3장 문화재보호협회 출반, 지구레코드사 제작 / <한국의 전통가곡> 고려대학교 민족문화연구소 출반, 지구레코드사 제작 / <한국음악선집 제15집, 여창가곡 15곡 수록> 국립국악원 발행, 지구레코드사 제작
1987 국립국악원 주최 중요무형문화재 발표공연 매년 참가 / 불교에서 명타원(銘陀圓) 법호 받음
1988 <한국음악선집 제17집 시조> 국립국악원 발행, 지구레코드사 제작 / 국민훈장 목련장 서품(저축의날 기념)
1989. 5.19 김월하 여창가곡발표회(국악당 소극장)
1990 월하예술단 창단 / 원불교 교조이신 소태산 대종사께서 구도하셨던 삼밭재기도원 건립 단독 불사 / 남북교류음악회 출연
1991 재단법인 월하문화재단 설립 초대이사장 취임
1992 월하문화재단 설립 1주년기념 전통음악발표회(국립국악원 소극장) / 한국정가악연구원(구.한국전통문화원) 창립 / 주한외국인 초청공연(워커힐) 등 공연 다수 / 한국국악협회 고문 / 대한민국 보관문화훈장 서품(10월20일 문화의 날)
1994 자랑스러운 서울시민상 수상
1995 KBS국악대상 특별공로상 수상
1996. 1. 1 전북익산시 원불교 중앙총부에서 작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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善歌의 큰 발자취
경북대학교 예술대학 국악학과 교수
재단법인 월하문화재단 이사장
김 경 배
격동의 시대를 살다 가신 20세기 최고의 명가 김월하(음력1917~1995) 선생, 생전에 회자되던 그 많던 찬사들만 짚어보아도 생전의 발자취를 가늠하고도 남음이 있을 것 같다. 선생께서 타계하신 지도 어느새 10여 년에 이르고 있다. 그러나 일의 선후를 가리지 못하는 어리석음 때문에 벌써 서둘러야 했던 음반 정리 작업이 이제야 빛을 보게 되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가곡의 멋조차 제대로 모르던 학생시절에 처음 듣던 선가의 노래는 아직까지 충격적인 순간들로 각인 되어 있다. 국악에 대한 호기심으로 충만해 있던 시절, 1950년대 중반이후로 기억된다. 나는 어머니께서 연주하시는 모습을 대할 때면 존경스러움과 먼 훗날에 대한 가객의 어린 꿈으로 벅차올랐다. 방송녹음이 있을 때면 반주를 대시느라 국악원에 종종 들르셨는데, 삼단같이 까만 머리위로 곱게 빗어 올린 가르마는 한국 여인상 그대로를 연상시켰다. ‘연꽃 아래 달을 지고 있다’는 아호처럼 노랫소리조차 고고하여 숲 속을 스쳐 가는 청량한 자연의 소리 그대로였다 고나 할까, 감히 연습장소에 어른거리기조차 조심스러워 문 밖에서 또래들과 훔쳐 듣던 그 소리는 너무도 높고 정갈하여 숨소리마저 삼켜야 했다. 산에서 바위가 구르듯, 때로는 잔잔한 호수에 소슬바람이 스쳐가듯, 자유자재로 넘나드는 그 소리에서 난생 처음 정가의 높은 경지를 발견하였다. 때로는 쉼 없이 흘러가는 강물처럼, 세월의 흐름도 그대로 멈춰선 듯 구구절절한 가조(歌調)의 절묘함에 시공을 넘나드는 듯한 착각에 사로잡히기까지 했다.
60년대 초 내가 대학에 입학한 후에는 정가 중에 백미요 절창이던 시창(詩唱)과 휘몰이 시조에 한참 심취되어 있었다.
누런 갱지에 만년필로 가로 세로로 줄을 긋고 얼기설기 정간을 만들어 채보 하느라 시간 가는 줄도 몰랐다. 60년대만 하여도 요즘처럼 녹음기가 흔치 않던 시절이라 시간만 나면 직접 한 구절 한 구절 물어 가며 공간을 채워나갔다. 그러나 선가의 소리를 한정된 공간에 담아 넣기란 우주를 축소시키는 작업만큼이나 어려웠다. 그러면서도 오묘한 가락 하나하나를 익혀가며 채보하는 것이 여간 가슴 벅차고 행복한 순간들이 아니었다. 만일 이러한 기회가 주어지지 않았다면 선가의 발자취를 바르게 전하기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랐을 것이다. 당시에는 내가 좋아 욕심 없이 채보해 놓았던 악보들이 오늘날 스승을 기리는 소중한 자료가 될 줄은 미처 깨닫지 못했다. 신비에 가까운 탁월한 예술적 감각을 지닌 분이셨기에 시김새 하나에도 함부로 흉내 낼 수 없는 철학이 감추어져 있었다. 심연에서 우러나오는 깊고 신비로운 느낌은 몇 백 년이 흘러도 그 한계를 뛰어넘을 예인은 없을 것 같다. 그래서 한국음악계의 원로이신 관제 성경린 선생께서도 ‘월하 이전에 월하 없었고 월하 이후에 월하 없다’고 하지 않았던가. 이제 스승께서 밟아 가셨던 가도의 발자취를 온전히 지켜가려는 참된 뜻이 있다면 선가의 예술세계를 자기 해석대로 재단하거나 변형시키지 말아야 할 것이다. 외형은 닮아도 내면의 경지를 터득하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요즈음 자칭 가인이라 일컫는 사람들 가운데는 곡의 이면적 특징마저 무시한 채 제멋대로 해석을 달아 혼란을 가중시키는 경우가 흔히 있다. 이는 우리 음악의 이면처리의 중요성을 간과해 버리거나 교만에서 비롯된 것으로 판단된다. 스승에게서 전수 받은 경험이 미진하여 소리의 이면을 들여다 볼 능력이 부족할진데 차라리 악보에 기대 이는 방법이 자신의 단점을 들춰내지 않는 현명함인지도 모른다. 우리 음악의 보편적 특징인 시김새 처리의 몰이해, 악보를 초월한 선가들의 가르침을 함부로 호도해 버리는 염치, 이런 일들은 자신을 높이고자 하는 허욕의 발로이거나 양심마저 저버리는 무책임한 행태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쉬운 예로 거문고보나 가야금보를 보자. 시김새에 해당하는 앞꾸밈음, 뒷꾸밈음, 혹은 요성과 같은 표현부호까지 일일이 기록한 악보는 없다. 그러나 그 내면을 찬찬히 들여다보면 넓은 창공을 날아가는 비행기 항로처럼 보이지 않는 규칙과 길이 나 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는 단견에 빠져 상투적인 말장난으로 이목을 흐려놓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주마간산의 고사가 더욱 생각나는 요즘 세태인지도 모른다.
바른 노래 정가, 다시 한번 내면에 담긴 참된 의미를 선가의 노래를 통하여 되새겨 보았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그 동안 일의 경중을 가리지 못해 어머니께서 전해주신 귀중한 음원을 곁에 두고서도 차일피일 미루다 이제야 마무리를 짓게 되었으니 죄스런 마음 금할 수 없다.
끝으로, 이번 CD가 출반되기까지 많은 관심과 도움을 준 재단식구들과 자료정리, 편집 등에 이르기까지 하나하나 직접 챙겨가며 정성을 쏟은 예찬건 사무국장에게도 이 자리를 빌어 고마움을 전하고 싶다. 아울러 제작, 기획 등 실무적인 전 과정을 맡아 음반이 나오기까지 수고를 아끼지 않은 (주)신나라뮤직 이태규 상무님과 제작팀에게 깊은 감사를 드린다.
이 음반이 다시 한번 한국 정가발전에 길잡이 역할을 하리라 믿고 선가 김월하 선생을 아끼고 존경하는 분들에게 큰 선물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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