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래는 월하문화재단에서 보내준 해설서 자료로 일부만 1-5집에 나누어 실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터뷰 자료:
<연합인터뷰> 김경배 월하문화재단 이사장
[연합뉴스 2005.01.14 05:10:10]
`정가의 어머니'' 김월하 10주기 기념 전집음반
(서울=연합뉴스) 이윤영 기자 = "월하 이전에 월하 없었고, 월하 이후에도 월하없다."
국악계 원로인 관재 성경린 선생의 말이다. 전통성악 장르인 정가의 최고 여류가객으로 칭송받던 김월하(金月荷.1918-1996) 선생. 1960년대 전성기를 꽃피웠던 국악계 스타이자 전통성악의 맥을 잇는 제자들을 길러낸 `정가의 어머니''였다.
올해 선생의 타계 10주기(96년 1월 타계했지만 음력으로는 95년 12월)를 맞아 의미있는 음반이 발매됐다. 월하문하재단(이사장 김경배)과 신나라가 제작한 `선가 김월하 정가 전집''으로, 선생이 생전에 남긴 37곡을 다섯 장의 CD로 엮었다.
"오래 전부터 기획했던 사업이었습니다. 선생이 남기신 음원을 정리하는 데만도 몇 년이 걸렸어요. 10주기에 맞춰 선보일 수 있게 돼 기쁩니다."
경북대 교수로 재직중인 김경배(65.중요무형문화재 제30호 가곡 예능보유자) 이사장은 국립국악원 국악사양성소(국립국악고등학교의 전신) 재학시절 월하 선생과 처음 인연을 맺은 후 혈육이 없던 선생을 줄곧 양어머니로 모셨다.
이번 전집은 선생이 타계하기 전 그에게 남긴 수많은 음원들을 정리해 내놓은 것. 여창가곡 한바탕 15곡, 시조 14곡, 가사 5곡, 시창 3곡 등 총 37곡으로, 이 중엔 최근에 발견한 `한양가'' 등 그동안 공개되지 않았던 곡들도 실려 있다.
김 이사장은 "사실 생전에 이 분 만큼 음반을 많이 낸 분도 없었다"며 "이번 전집은 그동안 발매한 여러 장의 LP와 유품으로 남긴 음원을 CD로 정리해 보존할 수 있게 됐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
월하 선생은 불우한 환경을 딛고 30대 중반의 늦은 나이에 정가에 입문, 대성했다는 점에서 삶이 더욱 빛을 발했다.
1918년 경기도 고양에서 태어난 선생은 겨우 두 살 때 호열자로 할머니와 어머니, 쌍둥이 오빠 등 가족 네 명을 하루아침에 잃었다. 그 충격으로 아버지는 가출하고, 선생은 어느 집의 양녀로 들어가게 된다. 16살 때 결혼과 함께 가정을 꾸렸지만 곧 ? 衫峠?한국전쟁으로 남편은 공산당원에게 납치되고 말았다.
김 이사장은 "어린 시절 가족을 대부분 잃은 선생은 타계 전까지 조카 둘 정도하고만 지냈다"며 "날씨라도 흐릴 때면 외로움에 혼자 눈물을 흘리시곤 했다"고 회고했다.
근검절약하는 생활로도 모범이 된 월하 선생은 바느질, 강사료, 공연수입 등으로 알뜰히 모은 전재산 50억원을 전액 월하문화재단 설립을 위해 기부, 화제가 되기도 했다.
1991년 세워진 재단은 선생의 뜻을 받들어 각종 연주회와 후학, 장학생 양성 등 정가 보존을 위한 여러 가지 사업을 펼쳐오고 있다.
10주기를 맞아 이번 음반뿐 아니라 6월 24일에는 국립국악원 예악당에서 추모 음악회와 학술 세미나를 열 예정이며, 기념품으로 선생의 사진을 넣은 `다포''(茶布)도 제작하기로 했다.
무엇보다 김 이사장의 바람은 현재 소수의 이수자, 전공자들에 의해서만 불리고 있는 정가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정가(正歌)란 글자 그대로 바르고 반듯한 ! 노래로서 옛 지식인층의 노래, 즉 가곡, 가사, 시조를 함께 일컫는다.
"정가가 무엇인지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아 안타까워요. 정가는 자기를 절제하는 노래지요. 쉽게 감정을 드러내는 요즘 세대에겐 거부감이 들 수도 있겠지만, 언젠가 그 깊은 매력을 깨닫게 되는 때가 꼭 올 겁니다."
yy@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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