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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반명[부제포함] <북한아리랑명창전집>
음반 번호 NSC-154-1/3*L , CD 3 매
제작 / 기획사 신나라
발매 연도 2006
구 분 준국악반
분 류 민요
업데이트 일시 2006-04-02
비 고
* DVD크기 별도정리.



 
<북한아리랑명창전집>

CD 1 :
01. 최청자 - 본조아리랑 2:34
02. 왕수복 - 본조아리랑 2:46
03. 왕수복 - 경기긴아리랑 4:42
04. 태영숙 - 본조아리랑 5:03
05. 태영숙 - 구조아리랑 2:25
06. 김순영 - 아리랑 4:16
07. 석룡진 - 아리랑 0:50
08. 김정화 - 경상도아리랑 2:29
09. 강응경 - 경기긴아리랑 2:44
10. 강응경 - 강원도아리랑 5:06
11. 김관보 - 경상도아리랑 3:15
12. 김연옥 - 밀양아리랑 2:01
13. 국립민족예술단 혼성중창 - 아리랑 2:20
14. 석란희 - 아리랑 2:19
15. 전통악기반주 - 아리랑Ⅰ 2:17 총 45:13

CD 2 :
01. 김종덕 - 진도아리랑 2:32
02. 김종덕 - 영천아리랑 1:53
03. 신우선 - 밀양아리랑 2:12
04. 국립민족예술극장 남성중창 - 강원도엮음아리랑 2:19
05. 국립민족예술극장 여성중창 - 원산아리랑 2:15
06. 국립민족예술극장 가야금병창단 - 랭산모판아리랑 2:44
07. 계춘이 - 단천아리랑 1:52
08..계춘이 - 아리랑타령 2:34
09. 계춘이 - 경상도긴아리랑 3:28
10. 배윤희 - 구.아리랑(헐버트 채보) 1:03
11. 배윤희 - 아리랑세상(한오백년) 2:15
12. 고명희 - 신아리랑 1:40
13. 고명희 - 통천아리랑 2:12
14. 김설희 - 진도아리랑 2:40
15. 고정숙 - 밀양아리랑 2:44 총 34:32

CD 3 :
01. 전인옥 - 경상도아리랑 3:35
02. 전인옥 - 서도아리랑 2:25
03. 전인옥 - 경기긴아리랑 5:10
04. 전인옥 - 신아리랑 3:07
05. 전인옥 - 삼아리랑 2:57
06. 렴진미 - 영천아리랑 3:26 * 렴직미에서 수정.
07. 렴진미 - 서도아리랑 2:21 * 렴직미에서 수정.
08. 김옥선 - 초동아리랑 1:41
09. 김옥선 - 영천아리랑 2:02
10. 김성일 - 단천아리랑 2:04
11. 흥인국 - 온성아리랑 1:32
12. 리성훈 - 영천아리랑 2:28
13. 리복희 - 경상도아리랑 3:06
14. 장애란 - 해주아리랑 2:11
15. 국립민속예술단 선창과 합창 - 영천아리랑 5:34
16. 전통악기반주 - 아리랑Ⅱ 2:26 총 46:11

* 일본 신세계레코드 보유 북한음악 음원.
 
* 북한 아리랑의 결정판이다. 해설서 자세하고, 가사도 있다. 북의 아리랑이지만, 충분히 공감할 수 있는 우리의 아리랑이다. 아리랑 사랑하는 사람은 필청의 음반이다. 아니 누구에게나 권하고 싶은 아리랑 음반이다. 신나라의 사업 중에 가장 높게 평가하고픈 작업이 아리랑 음반 출반이다. 신나라의 5번째 북한 아리랑 음반이다.(2006.4.2)

* 음반번호 NSC-154는 이중(2005 민속악자료총서 부록 음반 <명창을 알면 판소리가 보인다>)으로 부여되어 이 음반은 NSC-154-1/3으로 입력하였다.
 
* 해설서에서(일부) :

『북한 아리랑 명창 전집』
1999년 '북한아리랑'이 처음으로 발매된지 7년만에 다섯번째 북한아리랑 앨범이 탄생하게 되었다. '북한아리랑', '남북아리랑의 전설', '아리랑환상곡', '아리랑의 수수께끼'에 이어 2006년, '북한아리랑 명창전집'이 발매되었다.

이는 북한이 아리랑으로 인하여 우리에게 조금 더 다가왔음을 의미하는 일이기도 하다. 또한 남쪽에서도 북한의 아리랑을 받아들이는 자세가 좀더 우호적으로 발전했음을 느낄 수 있다. 혹자는 물론 민족의 노래인 아리랑의 교류를 누가 막겠느냐고 이야기하는 이도 있겠지만 첫 음반을 발매했던 7년전만 해도 순수한 우리민족의 노래'북한아리랑'이 '북한음악'이란 이름으로만 받아들여져 곱지 않은 시선을 받았던 것도 사실이다.

그래서 모든 관련 기관을 경유하여 설득과 재신청을 반복하고 나서야 음반 발매가 가능했다. 사실 그 때도 남북단일팀 단가를 '아리랑'으로 합의한지 10년이란 시간이 지난 뒤였는데도 말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 힘든 여정을 모두 지나 이제 북한아리랑의 다섯번째 앨범을 발매하기에 이르렀으니 실로 큰 의미를 갖는다고 아니 할 수 없다.

이는 남북 교류, 특히 남과 북의 문화 교류 역사에 기록 될 만한 일이기도 하고, 언젠가는 문화공동체로 함께 해야 할 우리에게 비록 작은 부분이기는 하지만 음악으로 이어지는 정신적 기여를 하게 되는 발판이 마련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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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아리랑 명창 전집]에는 광복 후 북한에서 부른 아리랑 명창 25명과 6개의 단체가 부른 총 46곡을 수록한 북한 아리랑의 총결산 음반이라 할 수 있다.

『우리는 언제부터 아리랑을 불렀는가』
'노래는 세상 따라 세상은 노래 따라' 라는 말이 있듯이 노래는 한 시대의 사회상과 민심을 가장 잘 나타내는 매개체이다. 예로부터 인간은 자신의 감정을 노래에 담아서 불러왔다. 이런 면에서 민요는 말 그대로 민심의 노래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사람들은 문자가 없었던 시기에도 토속적인 민요로 자신의 감정을 노래했다. 그렇다면 '아리랑'은 언제부터 불리어졌을까'

우리나라는 산이 많기로 유명하다. 백두산(2744m), 한라산(1950m), 지리산(1915m), 묘향산(1909m), 설악산(1708m), 금강산(1635m), 태백산(1561m)... 이 가운데 백두산이 이천 미터가 넘고나머지 산들은 대체로 천 미터 급이다. 산이 많다는 것은 강 또한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 압록강(790m), 두만강(520m) 낙동강(525m), 한강(481m) 대동강, 금강, 청천강, 임진강... 이렇게 우리나라는 산과 강이 적당히 높고 길어서 사람이 살기 좋은 자연환경을 지니고 있다. 우리나라의 산은 히말라야 산맥에 있는 에베레스트(8848m)와 같이 사람이 못사는 그런 높은 산도 아니고 강 또한 바다인지 강인지 모를 정도로 넓은 강은 없다. 다시 말해서 우리나라의 산과 강은 사람이 살기 좋은 적당한 높이와 길이인 것이다. 아마 상고시대의 사람들은 산을 등에 업고 강을 바라보며 그 사이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았을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민족에게 부동의 산은 온갖 비바람을 막아 주는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산이 아버지와 같은 존재라면 강은 우리민족에게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사람들은 강물을 이용해 논과 밭에 물을 대고 쉬지 않고 흐르는 강물에서 어머니의 부지런함을 배웠다. 강물은 서로 다투지 않고 사이좋게 흐르며 어떤 그릇에도 담기는 포용성을 지녔기에 어머니의 품성을 꼭 닮았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민족은 어떤 상황에서도 남편과 자식들에게 사랑을 아끼지 않는 어머니의 품성을 강물에 비유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중요한 역사책인 삼국사기를 비롯해 각종 고사에는 '아리나'라는 말이 흔히 나온다. 고구려 말에서 '아리(阿利)'는 길다는 뜻이고 '나(那)'는 물을 뜻하기 때문에 '아리나(阿利那)'라는 말은 '긴 강'을 의미한다. 그래서 배산임수, 곧 산을 등지고 강을 바라보며 그 사이에서 농사를 짓고 살면서 형성된 우리민족의 문화는 '아리나(阿利那)'의 문화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본격적으로 농사를 짓기 전까지 사람들은 수렵을 통해 생활을 이어나갔다. 이 시기에는 짐승을 많이 잡았을 때는 배불리 먹고 그렇지 않을 때는 굶는 불안정한 생활이 이어졌다. 사람들은 사냥감을 찾아 이리 저리 떠돌아다니며 집시와 같은 생활을 했을 것이다.

이런 생활에 비하면 사계절의 변화에 따라 계획적으로 씨를 뿌리며 농사를 지어 수확을 얻고 생활한다는 것은 그만큼 여유롭고 생활수준이 높아진 것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고어의 '아리나, 아리라' 라는 말은 비교적 원시적인 단어라 할 수 있다. 그러나 '아리랑' 의 '랑'은 후에 만들어진 말로서 인위적이라 할 수 있다. 우리 민족은 '아리나(阿利那)'라는 말을 키워드로 해서 각지의 토속적인 민요들이 사람들의 감정을 전하는 것으로서 불리어졌다고 생각할 수 있다. 또 후세에 와서는 그런 토속적인 민요 속에서 통속화된 민요도 유행하였을 것이다. 그렇게 '아리나'가 '아리랑'으로 불리게 된 것인듯 하다.

우리에게는 지금까지 많은 민요들이 있었는데 그 민요의 시초가 아리랑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다. 다시 말하면 아리랑이 먼저 '아리나(阿利那)'의 하천문화에서 '아리나, 아리라' 하는 토속적인 민요로 불리어지고 그 후 아리랑이 아닌 민요들(도라지, 양산도 등)이 나온것이 아닌가 한다.

아리랑이 먼저인가 민요가 먼저인가 하는 문제는 앞으로 천천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기고 어쨌든 하천문화 다시 말해 '아리나의 문화'의 주된 주제로는 모자간의 사랑, 남편을 사모하는 마음 등 가정적인 요소가 중심이 되었다. 물론 사람이 살아가는데에는 고민, 곤란, 수난, 갈등같은 수많은 문제들이 있지만 주된 내용으로 목가적이고 평화적인 주제를 많이 노래했다. 그 후 왜적의 침략등의 시련을 겪었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민족의 정신문화를 대표하는 권선징악(勸善懲惡)의 내용이 주제에서 벗어나지는 않았다. 그러나 19세기, 나라와 글을 빼앗기고 가족도 빼앗기는 그야말로 민족의 가장 큰 수난을 겪게 되면서부터 아리랑은 저항과 반항의 노래로 변하게 되었다.

『광복 후 북한의 아리랑』
광복 후 북에서는 '반제'반봉건 민주주의 혁명'이라는 시책을 내놓았고 음악에서도 '민족음악 건설 방침'을 내놓았다. 그 당시는 일제의 '민족문화 말살정책'으로 인해 민족 음악 유산이 유실되고 말과 글에도 일제문화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었고 또 오랫동안 이어져 온 봉건주의적 사상으로 민요 등의 서민음악을 천시하는 관습들이 남아있었다. 그런 상황 속에서 민요를 중심으로 우리의 민족음악 유산을 발굴하는데 힘썼다. 전문 음악인들은 물론이고 전국적 범위로 예술단체 등에서 '민요 발굴조'를 만들어 수집 작업을 시작하게 되었다.

당시 직접 민요를 수집한 한시연(작곡가)은 이렇게 말했다. '당시 내각에 녹음기가 4대뿐이었는데 그 중 2대를 빌려서 민요의 녹음, 수집 작업을 했다.' 그 만큼 북에서 민요 수집 사업을 중요시 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한 민요를 수집해서 보존하는 것 뿐만 아니라 그것을 계승, 발전시키는 것에 대해서도 힘썼는데 '민요를 잘 알아야 사람들의 감정과 정서에 맞는 조선식의 노래와 음악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에서 모든 음악가들이 민요의 전통을 이어갈 수 있도록 수집도 하고 민요곡집도 내고 거기에 대한 연구사업도 하였다. 그때에 많이 불리어진 것이 최청자, 왕수복의 '본조아리랑', '긴아리랑'등 인데, 방송을 통해서 많이 알려졌다.

그리고 공화국 창건 10돌기념(1958년)때에 북에서는 처음으로 3천명이 출연하는 '대음악 무용 서사시'가 상연되었는데 극 중 제1장 2경의 살길을 찾아서 동포들이 동북 지방이나 해외로 유랑하는 장면에서 강응경씨가 부른 '경기긴아리랑'이 구슬프게 흘러나와 많은 인기를 얻게 되었다. 또 남쪽에는 알려져 있지 않았던 '단천아리랑(함경북도 단천)', '해주아리랑(황해도)', '온성아리랑(강원도)', '통천아리랑(강원도)' 등도 같은 시기에 수집된 것이다. 이러한 오랜 민요수집 사업의 결실이 최근 '조선민요천곡집 연구자료집'을 발간하게 된 것이다.

한편 2001년도에 남측 KBS TV에서 처음으로 '영천아리랑'이 소개되었는데 경북 영천지방 사람들이 이 아리랑을 처음 들었다는 일도 있었다. 북한에서는 김종덕이라는 사람이 방송에서 불러 모르는 사람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곡이고 지방공연에서 '영천아리랑'을 부르면 삼창, 사창, 오창, 심지어는 십창까지 나왔을 만큼 인기가 있다고 한다. 그런데 어떻게 영천지방 사람들도 모르는 곡이 북쪽에서 광복 후 오늘까지도 애창되고 있는 것일까.

이렇게 의아한 현상은 지금도 남'북의 음악 전문가들 사이에서 거론되고 있는 이야기 중 하나다. 그 외에도 '엮음아리랑(강원도)'이나 '경상도 긴아리랑'을 많이 애창했다. 북에서는 김정화씨가 부른 5/8박자의 '경상도아리랑'도 아주 좋아했는데 아마도 남쪽이 고향인 사람들이 많아서인지 선율은 강원도 메나리조이면서 건드러진 느낌의 '경상도아리랑'이 오케스트라의 주제로도 많이 사용될 정도로 유명하다.
이러한 면을 볼때 북한의 아리랑은 남도창보다 서도창 쪽을 더 좋아하고 지역적으로도 더 가깝게 느끼는 경향이 있다고 생각된다. 그것은 북의 문예정책으로 민요 창에서 탁성을 없앤다는 방침때문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번 '북한아리랑명창집'을 내면서 북한의 역대 명창들의 노랫소리를 들으며 북쪽의 지나온 시간들을 떠올릴 수 있었고 해방 후부터 불려온 아리랑이 전쟁중에나 전 후 복구건설시기에도 불려져 우리가 '아리랑민족'임을 다시한번 새겨 본 기회가 됐으며, 오늘날까지도 계속 이어져 온 우리의 전통아리랑을 주제로 더 많은 새로운 미래의 아리랑이 창작되기를 희망한다. 또한 이별의 아픔이 상봉의 기쁨으로, 분단의 고통이 통일의 환희가 되어 민족의 소원인 통일이 이루어지는 그날 온 민족이 다함께 부르는 '아리랑'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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