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해설서에서 :
[세상]과 [나들이] 곡에서 처음에 시작하는 북(탐탐)연주는 한국 농악에 쓰여 지는 풍물가락으로써, 북을 쳐서 신호를 울리면 하던 일을 멈추고, 연희를 위한 판을 벌리기 위해 한데 모여 연주대형으로 갖추라는 ‘점고’가락이다.
온 세상을 상상하면서 하나가 되기를 기원하였으며, 국악과 양악의 장르를 어우르는 이 음악을 통하여, 하늘에는 감사와 찬양을 드리고, 땅에서는 평화와 축복이 임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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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의 달’ 김희현의 자전적 음악에세이-
[고통 없이 갈 수 없고 사랑 없이 갈 수 없는 길]
본 앨범은 ‘음악으로 듣는 자전적 에세이’이다. 60년 가까이 드럼을 두드려 온 김희현이 자신의 삶과 음악세계를 담았다. 평생 남의 음악에 자신의 음악을 수없이 넣어주던 그가 드디어 자기 앨범을 만든 것이다.
앨범 전체가 자신의 음악인생을 회고하듯 유기적 통일감을 가지고 흘러간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듯 북소리가 들린다. 북소리는 풍물에서 판을 벌리기 위해 두드리는 ‘점고가락’으로 전이된다. 뜻 밖에 그레고리오 성가의 ‘아뉴스 데이’(Agnus Dei 하나님의 어린 양)와 ‘도나 노비스 파쳄’(Dona Novis Pacem 우리에게 평화를)이 맑은 소프라노로 나타난다. 하늘에 제를 지내는 것인가. 이윽고 현란한 락 사운드가 터진다. 일렉트릭 기타에 이어 해금이 차고 나가고 태평소도 운다. 심상치 않다.
이어지는 판소리는 김희현과 드럼의 운명적 만남 그리고 드럼을 통한 삶의 과정을 들려준다. 판소리 북과 판소리꾼의 대화가 아닌 드럼이 울고 판소리가 얹혀 지는 방식이다. 그럼에도 판소리의 격조가 하나도 손상되지 않았다. 조선조 숙종(肅宗) 무렵에 생겨 300년에 걸쳐 익어 온 판소리가 새로운 옷을 갈아입는 순간이다. 10분이 넘는 이 창작 판소리에는‘드럼가’라는 제목이 붙었다. ‘흥보가’, ‘적벽가’, ‘수궁가’와 같은 맥락의 제목이다.
이어지는 ‘아시아의 달’, ‘신바람’, ‘천안삼거리’, ‘아리랑’ ‘바보처럼’등에서 그동안 그가 두드려 왔던 모든 스타일의 음악이 나타난다. 스윙, 트위스트, 로큰롤, 락, 펑키, 랩 등이 ‘자연스럽게' 모습을 보였다가 사라진다. 중요한 것은 이 모든 이질적 요소들이 모두 조화를 이룬 다는 것.
앨범 후반에 수록된 ‘인생 그 길에서’는 사비(Savvy)가 후련하고 처절하다. 경기민요의 시김새였다.
마지막 곡인 찬송가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좋은 곡이지만 흔해빠진(?) 곡이기에 평가절하 된 곡이 아니던가. 노래가 아닌 소리로 듣는 ‘어메이징 그레이스’는 가슴을 쥐어뜯고는 영적인 가스펠 사운드로 넘어간다. 드디어 머리 부분 그레고리오 성가에 숨겨진 비밀이 밝혀진다.
김희현은 평생 북을 두드렸다. 북을 두드려 리듬을 만들어 내는 일은 많은 사람을 흥분시키고 때로는 진정시키는 일이지만 정작 중요한 일은 자신이 북 º”에서 길을 찾는 일이다. 사람이 사는 길이 북 속에만 있을까. 머슴살이를 해도 그 안에 길이 있는 것을-. 장사를 하거나 글을 쓰거나 정치를 해도 결국 길을 찾지 못하면 아무 것도 이루지 못한다.
오직 한 가지 일에 마음을 쏟아 최선을 다하는 것을 유정유일(惟精惟一)이라 한다던가. 바른 길을 전일(專一)하게 지킨다는 뜻으로 줄여서 정일(精一)이라고도 한다. 고통 없이 갈 수 없고 사랑 없이 갈 수 없는 길을 묵묵히 걷는 것을 말한다. 길을 찾는 것이 쉽지 않지만 길을 찾으면 나이 들어가는 것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단다. 현인들의 말이다. 문득 카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 1760 ~ 1849)의 말이 떠오른다. ‘여섯 살 때부터 자연을 그리기 시작했지만 일흔 셋에서야 날짐승과 들짐승, 벌레와 물고기의 뼈대를 파악했고, 식물이 자라는 법을 이해했다. 계속 노력한다면 아흔에는 자연의 핵심을 꿰뚫을 것이다.’ 그는 서구 인상파 흐름에 큰 영향을 미쳤고 19세기 유럽 미술을 뿌리 채 흔들었다. 작품으로 ‘가나카와의 큰 파도’가 유명하다.
나다니엘 호돈의 단편 ‘큰 바위 얼굴’에서 큰 바위 얼굴이 나타났다고 열광하는 군중 속에서 소년 어니스트는 쓸쓸히 발길을 돌린다. 큰 바위 얼굴이라고 군중이 열광하는 사람이 진정 큰 바위 얼굴이 아니었듯 아직까지 우리가 이룬 퓨전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퓨전국악’은 우리음악이 가야«“ 길이다. 물론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이룬 작업 자체를 부정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완성도에서 미흡했다는 것이다. 아직 확실한 길을 찾지 못했다는 편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이렇게 조금씩 완성을 향해가는 길이었는데 아차! 오히려 과열되어 우리 전통마저 망가질 조짐이 보인다. 세계로 나가는 길을 찾기 위해 불을 밝혔다가 초가삼간에 불붙게 생겼다. 그러나 대세를 어찌하랴. 나 혼자 쫓아 다니며 노심초사하던 참에 김희현 선생이 새해 벽두에 음반을 들고 찾아 오셨다.
조심스럽게 내민 음반에서 소년 어니스트가 큰 바위 얼굴이 되며 소설이 맺듯, 선생의 음반에서 지난 30년간 ‘퓨전국악에의 시도’라는 우리 음악의 실험적 시대를 맺는다.
이 앨범을 들으며 우리는 김희현이 걸었던 음악의 길에 동행한다. 세 살에 판소리 북으로 시작, 드럼 스틱으로 바꾸어 쥐고 60년 가까이 걸어 온 길이다. 고통 없이 갈 수 없고 사랑 없이 갈 수 없는 구불구불한 그 길에서 우리는 지금까지 들어왔던 모든 스타일의 음악을 만난다. 그 길의 중심을 한국음악이 관통하고 있다. 그 길이 결국 김희현이 도달한 신앙의 길이었음을 앨범 마지막 이르러서 알았다.
비로소 머리 부분에 나타난 그레고리오 성가의 비밀도 풀렸다.
김희현 프로필
1956 판소리 '소리 북’
1966 ~ 고교 밴드부 스네어 드럼
1974 ~ 77 육군본부 군악대 (타악기)
1977 ~ 79 용산’미군UN’클럽 활동드럼
1979 ~ 85 MBC (문화방송국) 관현악단
서울국제가요제 1~8회
대학가요제 2회~8회
1980 ~ 85 한국1세대 재즈 ‘야누스’클럽출연
1985 ~ 95 ‘조용필과 위대한 탄생’ 활동
미국 ‘카네기홀’ 공연 드럼 연주*
1985~현
국내 유명가수 (서태지, 김건모, 인순이, 이미자, 패티김, 남진, 나훈아,
신승훈, 이승철~등 400~500명 음반&공연
1986 아시아 재즈 페스티벌 출연
1988 서울 올림픽 전야제 참가
1991 사물놀이 (최종실, 이광수, 김덕수 ~ ) 세종문화회관 협연
1995 우즈베키스탄 국교 친선공연
1996 ‘김희현’드럼쑈, 논현동 삼익아트홀
1996~2007 KBS ‘한국방송공사’ 관현악단 ¿‘사
‘열린 음악회’ 100회~600회 고정출연
오스트리아 ‘빈’ 공연
‘김대중’대통령 노벨평화상 수상기념 ‘평화 음악회’
6.15 남북 공동선언 기념 금강산 공연
하와이 이주 100주년기념 공연
KBS 교향악단 협연
KBS 국악관현악단 협연
한인이주 140주년기념 모스크바 ‘크레믈린 대극장’ 공연
1998~현 ‘김희현’ 드럼스쿨 개원
2001 ‘바흐 서거 250주년’ 여의도 아트센터 공연
2002 [도쿄] 한일 월드컵 성공기원 음악회
2003 대한민국 연예대상 연주상
2006 전주 세계소리축제 ‘유관순열사가’ 공연
2007 사천 세계타악축제 ‘천지울림’
2008 제17대 ‘이명박’대통령 취임식 국회의사당 축하공연
2009 광주 문예회관 ‘아시아 예술제’ 김희현과 아우름 공연
이명박대통령 취임 1주년 기념 예술의전당 ‘동북아평화콘서트’
세종문화회관 ‘딥퍼플’의 ‘존로드’와 협연
서울시립 ‘국악관현악단’ 정기연주회
현 ‘김희현’ 드럼스쿨 대표
퓨전국악 ‘김희현과아우름’ 예술단 단장
슈어 이어폰 & 마이크 엔도저
(사)한국재즈협회 상임이사
중앙대학교 국악대학 연희예술학부 출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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