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E-MAIL | SITEMAP  
  운영자게시판 질문게시판(국악음반) 방명록 광고게시판 쉼터  
국악음반-업데이트 기준 | 출반현황 음반 구입처 안내 나의글들 정창관
2018년신보 | 2017 | 2016 | 2015이전 | 모든음반
음반 관련정보 외
국악음반 | 고전음악 | 별에 관한글 | 기타
운영자소개 | 나에 관한 기사들
 
 

 
: 117, 1/4    
     정창관  (2016-04-29 오전 11:48:48   : 833, : 172)
     http://www.gugakcd.kr
     창녕아리랑, 이 음반을 나의 고향, 창녕에 바칩니다.
* 이번에 1930년 '조선민요의 연구'에 근거한 <새로운 창녕아리랑> 음반을 제작하여 고향에 기증했습니다. 해설서에 수록한 관련 글을 인용합니다.

-------------------------------------

이 음반을 나의 고향, 창녕에 바칩니다.

제작·기증자: 정창관(정비앤에이(주) 대표 / www.jungbna.com)

자기가 태어나고 자란 고향은, 객지에서 산 시간이 더 길지라도, “그곳이 차마 꿈엔들 잊힐리야”라고 정지용 시인이 ‘향수’에서 노래한 것같이 누구나 죽을 때까지 그리워한다.

1961년 케네디 대통령은 취임연설에서 미국 국민에게 ‘국가가 당신을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지말고 당신이 국가를 위하여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물어라’라고 갈파하였다. 이 문귀는 한 평생 내 가슴속에 간직되어 왔다.

내가 고향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나는 국악애호가이다. 오랫동안 국악을 좋아하다보니 어느새 전문가 위치까지 오게 되었다. 내가 잘 할 수 있는 일은 국악음반을 만드는 일이다. 몇 년전에 일제강점기에 ‘창녕아리랑’이 있었다는 글을 보게 되어, 연구를 하게 되었고, 작년에 고향을 위해 ‘창녕아리랑’ 음반을 제작하여 고향에 기증할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이 음반은 탄생하게 되었다. 어느 지자체가 만들더라도 이보다 더 잘 만들 수 없을 정도로 혼신을 노력을 다 하였다. 기증의 뜻을 희석하지 않기 위해 창녕군의 금전적인 도움을 전혀 받지 않고 진행하였다.

이 음반의 기증에 도와주신 분들이 많다. 형님(정규창), 동생들(정창술. 정찰길)의 지원이 있었기에 이 기증사업을 시작할 수 있었다. 소리꾼, 작곡자, 작사자, 유지숙 명창, 국악방송국은 창녕군에 저작권을 기증한다는 조건에 동의해주었다. 음반 제작을 도와주신 재경창녕향우회, 창중총동문회와 창중20회 동기들에게도 감사의 말을 전하는 바이다. 해설서에 글을 보내주신 분들에게도 감사하다.

이 ‘창녕아리랑’이 널리 유포되어 창녕군민들에게 문화예술을 향유하게 하고 자긍심을 심어줌은 물론, 고향을 떠난 향우들에게는 애향심을 고취하는 매개체가 되기를 간절히 바라면서,

이 음반을 나의 고향, 창녕에 바칩니다.

---------------------------------------

1930년 ‘조선민요의 연구’에 근거한 새로운 ‘창녕아리랑’과 그 음반제작에 대하여

글: 정창관(한국고음반연구회 부회장)

우리 ‘창녕아리랑’은 근거가 있는 아리랑이다. 1930년 조선총독부 기관지 『조선』(14권 7호) 김지연이 쓴 글 ‘조선의 민요 아리랑 2’(조선민요의 연구 3)에 다른 26개의 아리랑과 더불어 ‘창녕아리랑’이 언급되어 있다. 단지 2수의 가사만 수록되어 있지만, 당시에 창녕에 ‘창녕아리랑’이 불리고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몇 년 전에 이 사실을 알고, 혹시나 창녕의 어른신 중에 누군가 ‘창녕아리랑’을 부를 수 있나 싶어 수소문하였지만, 아는 분이 없었다. 그래서 새로 곡을 만들기로 하였다.

먼저 국악계에서 제일 촉망받는 젊은 작곡가(함현상: 영화 귀향 음악감독)를 선정하고, 작사는 창녕에 살고 계시는 시인(성기각 선생)을 창녕군으로부터 소개받아 작년 4월경부터 작업에 들어갔다. 창녕의 풍광을 음악에 담기 위해 작년 8월에는 작사자의 안내 아래 작곡자와 같이 창녕군 전체를 일주하였다. 제작자도 고향이 창녕이지만 창녕을 이렇게 샅샅이 다닌 적은 없었다.

노래 가사에 창녕군의 14개 읍·면을 넣기 위해 각각 읍.면의 가사를 8절, 8절 가사에 담았다. 창녕에 내려오는 토속민요 가사도 넣고, 영산에 계신 지종 스님이 부른 아리랑 가사 중에서 일부를 차용하고, 어린이들이 부르기 쉬운 가사도 넣고, 마지막으로 1930년 ‘조선민요의 연구’에 실린 2절 가사도 활용하였다. 작곡은 1930년 가사에 실린 ‘쾌조’라는 표현을 살려 빠르고 즐거운 노래로 만들어졌다(작곡과 작사에 대해서는 뒤에 실린 작곡자와 작사자의 노트를 참조 바람). 반주는 국악방송예술단이 수고해주었다.

노래는 젊은 소리꾼이 부르도록 하였고, 토속민요는 아마추어 소리꾼들이 부르게 하였다. 어린이들이 쉽게 부를 수 있도록 어린이용 ‘창녕아리랑’도 수록하였다. 노래 곡 외에 반주도 담아 누구나 앞의 아리랑을 듣고 어울리는 반주에 맞추어 즐겨 부를 수 있도록 하였다.

음반 한 장에 70분이 넘는 음악을 담을 수 있었다. 남는 공간에는 1929년 나운규의 영화 ‘아리랑’(1926년 10월 1일)이 음반으로 나오기 전에 발행되어 오선보 악보로 남겨진 아리랑을 보너스 음원으로 담았다. 실제 나운규 아리랑 음악은 1929년에 일본 콜럼비아레코드 40002/40003(아리랑-영화극 성동호. 노래: 유경이. 반주: 조극관현악단. 월광당조선악부)으로 처음 선보였다.

이 6곡은 국내 첫 음원으로 소개되는 것으로 자료로도 중요한 가치를 지닐 것이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2007년에 발굴하여 소개한 ‘1896년 7월 24일, 한민족 최초의 음원’(이 음악이 담긴 6개의 에디슨실린더 원통음반은 현재 미의회도서관에 있음) 11곡도 담았다.

<음반 표지>


 

       

/skin by urim

Best viewed with MS Explorer 5 at 1024x768 * Copyright ⓒ 2000 Changkwan Jung.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