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완된 해설서 내용입니다 :
2009년 해설서 보완
2007년 7월 24일 출반 이 후 진행사항에 대하여...
2007년에 음반이 출반된 후, 미국의 프로바인 교수(메일랜드대학)는 연구를 계속하였다. 2007년 9월에 한국에 와서는 1896년 5월 8일자 The Washington Post에, ‘Seven Koreans at Howard’ 제목으로 "동방에서 온 학생 7명이 하워드 대학교에 들어오다. 한인 학생들로 다들 귀족 출신이고, 영어를 전혀 못한다, 여섯 명은 키가 크고, 한 명은 작다, 다들 머리 색이 검고, 몽골계 특징으로 다들 눈이 작다…… 이들이 도착한 날 학생들 사교 모임이 있었다. 한인 학생들은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으로 관찰하는 모습이었다, 여학생들이 한인 학생들을 둘러싸고 노래를 불러달라고 요청하자, 처음에는 못 한다고 하더니, 결국 마지못해 스와니 강과 한국 민요 등 몇 곡을 불렀다.”라는 가사를 보여주면서, 노래를 한 소리꾼이 이들 유학생일 가능성이 높다라고 얘기하였다. 필자는 필자대로 소리꾼이 당시의 외교관일 수 있다는 전제 하에 국립중앙도서관과 고려대학교 도서관에서 당시 외교관임면자료 등을 조사하였으나, 동일 이름을 발견하지는 못하였다.
2008년 2월 14일 프로바인 교수는 한국학중앙연구원(운중관 회의실)에서 한국의 첫녹음에 대하여 세미나를 개최하였다. 이 세미나를 계기로 프로바인 교수와 한국학중앙연구원 사회과학부 이완범 교수가 소리꾼의 3사람 중 2사람이 책 ‘재미한인의 독립운동’(방선주-한림대학교 아시아문화연구소:1989)의 329 페이지에 ‘1896년 10월 1일 하워드대학의 한인학생들’이라는 사진에 나오는 사람과 동일인이라는 것을 밝혀내었다.
지금까지 소리꾼이 영어 스펠링을 번역하는 과정에서 안정식인지 안종식인지, 이희철인지 이혜철인지 불명확하였지만, 이완범 교수는 사진과 함께 안정식과 이희철로 확인하였으며,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안정식(安禎植)은 제일 좋은 가문 출신으로 약 200명의 유학생과 더불어 26세인 1895년 5월에 일본으로 건너가 경응의숙(현재 게이오대학)에 입사하였다. 이듬해 1896년 2월 27일부터 28일 사이 일본 경응의숙 기숙사를 도망하여 미국으로 도항했다. 안정식은 경기도 광주부(廣州府) 상림(祥林)에 거주하였으며 호주였다. 안정식은 임병구, 이범수, 김헌식, 여병현, 이하영과 함께 도쿄 재일공사가 재미공사 서광범에게 보내는 서신을 소지하고 2월 28일 요코하마발 캐나다 태평양 철도회사의 기선 Empress of India호에 탐승하여 4월 11일에 밴쿠버에 도착하였다. 이들은 영어도 할 줄 모르면서 단돈 500엔만을 들고 도항하였으므로 교통비가 없어 밴쿠버에 머물렀다. 서광범 공사는 이들의 연락을 받고 워싱톤으로 올 수 있도록 교통비와 여관비를 지불하였다. 4월에 도착한 이들을 서광범 공사가 주선하여 하워드대학에 입학시키고, 거처할 집을 제공하였으며 몇몇 인자한 부인들이 식생활을 책임졌다. 5월에 공부하기 시작하였을 때는 영어를 통 몰랐으나 가을학기에는 정규과목을 택할 수 있을 정도로 향상되었다.
이 하워드대학에는 경응의숙 유학생 6인 외에도 이희철이 있었는데, 1896년 하워드대힉 연차보고서의 한국인 7인은 안정식과, 함께 간 5인과 이희철로 판단된다.
이희철(李喜轍)은 경성 서부차동(西部車洞) 이용만의 장남으로, 1895년에 경응의숙에 입사하였으며, 당시 25세였다.
2007년 출반할 때에는 에디슨 원통형 원반의 케이스 사진만 공개되었다. 프로바인 교수는 2009년 2월에 1896년 플래쳐 여사에 의하여 녹음된 그 장소 근처, 현재의 미의회도서관에서 한민족의 첫음원에 대하여 강연을 하였다. 이때 처음 원통형 음반 실물이 공개되었으며, 1896년 녹음에 대하여 이래와 같은 가설을 제시하였다.
1896년 7월 24일 한인 남성 3 명이 워싱턴 시내 국회의사당 인근에 있는 앨리스 플래처의 집을 찾습니다.
"양반 체면에 여자 혼자 사는 집에 간다는 게 영 마음에 걸리네만……"
"여긴 미국일세. 그리고 우린 엄연히 부탁 받아 가는 게 아닌가."
"그렇네. 무슨 기계에 대고 노래만 부르면 되는 거라네. 우리 노래를 녹음해서 후세에 남긴다지 않나. 학문 연구가 목적이라니 도와주는 게 도리라고 생각하네."
미국 원주민 인디언 연구가 전공이었던 인류학자 앨리스 플래처……. 아직 흔치 않은 기계였던 에디슨 축음기를 갖고 있었는데요. 동료 학자 애나 톨맨 스미스의 부탁으로 이들 한인들의 노래를 녹음하게 됩니다. 플래처의 집에 찾아온 한인 남성 3 명은 전통 민요와 동요 등 모두 11곡을 불렀고, 플래처는 이들이 홀로, 또는 둘이서 부른 노래를 에디슨식 원통형 음반 여섯 개에 담습니다.
필자는 음반을 출반 한 후, 이 음반은 한민족의 문화유산으로, 분명히 미국의 것이지만, 우리가 찾아와야 할 보물이라고 생각하여 여러 방면으로 접근해 보았다. 미의회도서관에 있는 한국인을 통해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물어보았다. 이 6개의 음반은 플래처 여사가 기증한 것이기 때문에 미의회도서관이 한국에 돌려주기에는 불가능할 것이라 말하였다. 원통형 음반은 파손되기 쉽기 때문에( 6개 중 한 개는 기증받을 시 일부 파손되었으면, 한 개는 미의회도서관에 기증 후 파손되었고함) 버지니아에 있는 국립기록보관소로 이관할 것이라고 알려주었다. 이관하기 전에 필자는 원통형 음반을 영상으로 기록하는 곳이 필요하다고 판단하여 KBS 워싱톤지국(이현주 기자)에 정보를 제공하게 되었고, 2009년 3월 23일 9시 뉴스에 미의회도서관 수장고에 있는 음반이 영상으로 소개되었다.
이 에디슨 원통형 음반은 개인의 힘으로 찾아올 수 없다. 이 음반에 대하여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다한 것 같다. 정부기관이 한미우호관계를 내세워 적극적으로 나서면, 장기임대 내지는 영구임대형식 등으로 가져올 수 있는 가능성도 있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소리꾼에 대하여.......
앞서 서술한바와 같이 소리꾼 3인은 안정식과 이희철로 밝혀졌으며, 남은 한사람, 영어표기의 Son Rong(양손으로 번역)은 아직 밝혀지지 않은 상태이다.
앞의 사진에서 보는바와 같이 사진의 뒷줄 맨왼쪽과 맨오른쪽 사람이 이희철과 안정식인데, 원본의 사진 설명이 애매하여 바뀔 가능성도 있지만, 필자가 이 사진 외에 사진에서 안정식의 사진을 대조하고는, 맨왼쪽이 이희철, 맨오른쪽이 안정식으로 확인하였다.
한민족의 첫 음원에 대하여...
2007년에 이 음반을 출반한 후에도 계속해서 한민족의 첫녹음은 1893년 시카고 만국박람회에 참가한 경기명창 박춘재라는 글이 여기저기 보이고 있다. 이는 사실이 아니라고 필자는 확신하고 있다. 1893년 박람회에 참가한 사람은 10명의 장악원 악사로 박춘재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가지 않은 사람이 녹음을 했을리는 없으니, 이는 와전된 이야기이다. 박춘재 명창은 아니지만, 당시에 박람회에 참가한 악사들이 녹음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하지만, 필자는 그 가능성이 매우 낮다고 생각한다. 당시에 장악원 악사들은 시카고에 머문 일자가 5일밖에 되지 않아, 시간상으로 녹음을 할 여유가 없었고, 당시의 녹음기술은 10명의 관현악 연주를 담을 기술이 아니었다. 기껏 독창이나 기악 독주 정도의 연주를 집성기 바로 앞에서 연주하여 원통형 음반(실린더)에 녹음하는 수준이었다. 프로바인 교수는 1893년 박람회와 관련하여 원통형 음반이 200매가 존재하는 것으로 파악하였고, 그 목록에는 Korea라는 단어를 찾을 수 가 없었다고 한다. 당시에 한국이라는 나라가 생소하였기 때문에 우리음악을 녹음을 하고, 표기가 안되었을 경우가 있어 200개의 실린더 음악을 다 들어보아야 한다고는 하였지만, 찾을 가능성은 매우 낮다. 만약 그 때 장악원 악사들이 녹음을 하였더라면, 인솔자인 정경원을 통해서 이루어졌을 것이고, 당시에 녹음은 아주 신기하고 특별한 행위로 간주되어 정경원이 녹음에 대하여 보고를 하였거나 일기에 적을 것으로 추정하지만, 어디에도 녹음에 관한 기록은 없다.
1986년 전에 어떤 녹음이 어디엔가 남아있을 지는 모르지만, -그 가능성은 거의 없음-, 현재로서는 1896년 7월 24일 워싱톤에서 녹음된 이 음반이 한민족의 최초의 녹음인 것은 확실하다. 그 이후 1907년에 상업용 음반, 미국 콜럼비아 회사의 원반형 쪽반(한면만 녹음한 유성기음반)이 출현한다. 물론 1896년과 1907년 사이에 에디슨 원통형 음반이 국내에서 녹음되었다는 기사가 나타나고 있지만, 실물이 발견될 가능성은 별로 없을 것 같다.
* 이전 해설서 내용은 www.gugakcd.kr/ckjcd10.htm과 그 이후 소식은 www.gugakcd.kr/ckjcd10-1.htm에 수록.
* 이후 기사 내용 : www.gugakcd.kr/nggs30.ht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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